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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서 개인전 <초를 불고 난 후>

이목화랑   I   서울
손길이 닿는 회화

콘노 유키


떠올리고 싶은 과거가 있을 때, 그것은 온전한 모습보다는 특정 순간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부분만 확대된, 그러면서도 맥락과 서사를 함축하는 단편이다. 그때 보고 들은, 감정이 나타난 그 특정 순간은 온전하진 않지만 모든 게 담겨 있다. 필름부터 디지털, 심지어 SNS 게시물에 이르기까지, 사진은 이 작은 크기에 많은 것을 담아내는 역할을 해 왔다. 우리는 이 프레임 안에 들어온 것을 소장하고 싶어 하기에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김영서가 흑백조 회화에 담기 전,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을 상상해 본다. 촬영하고 싶은 대상이 있고, 시선을 고정하고, 카메라를 든 손과 팔의 균형을 자연스럽게 잡고, 그 장면을 인식한 후, 셔터/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해서 나온 사진은 연필과 목탄, 그리고 호분을 사용하여 회화 작업으로 발전된다.

2020년대 초반에 그린 작업은 대체로 유년기의 특정 장면을 몽환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비해, 최근 작업에서 김영서는 한 장면의 일부분에 주목하여 세부적으로 화면에 옮긴다. 이러한 특징은 작은 크기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대형 작업에도 해당한다. <젬마>(2026)를 보면 인물이 프레임 밖으로 벗어나 있고 창 너머의 풍경을 흐릿하게나마 보여준다. 유추하는 시선이 여기에 허락된다. ‘외연’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장면이 어떤 장면인지 떠올려 볼 수 있는 기회로서 관객에게 주어진다. 그럴 때 김영서의 회화는 작가가 기억하는 특정 장면에 귀속되는 듯하다가도, 보는 사람의 시선을 통해서 타인의 서사와 경험을 불러낸다. 그러면서 작품은 서사와 상상을 그려나가는—바꿔 말해 이끄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여기서 잠시 회화에 등장하는 소재도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전에 소개되는 작품을 보면 사물을 들거나 쥐고 있는 손을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손길이 닿는 물건이 등장할 때, 김영서의 작품은 감상자에게 상상을 인도(引渡이자 引導)할 기회를 제공한다. 머그잔과 티백(<젬마>), 자동차 핸들과 키(<엄마 차>), 김밥과 식칼, 들고 있는 양초(<초를 불고 난 후>)나 구슬이 달린 머리끈(<방울>, 모두 2026)이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하게 한다. 시선이 그러한 세부에 닿는 순간, 우리는 멈춘 이 순간 너머 이야기를 펼쳐놓을 수 있다. 손으로 잡거나 건드리는 물건이 여러 번 등장할 때, 그것은 시선을 멈춰 세우는 동시에 기억과 상상을 활성화하는 장치가 된다. 손이나 팔이 등장하지 않을 때 역시, 이러한 사물은 보는 이의 시선을 잡는다. 시선이 닿는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대상은 거기에 있다. 작가가 개인적으로 와닿은 순간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감상자에게 시선을 양도할 때, 그 장면 바깥으로 시야를 넓혀가 서사를 그려 나가기를 허락한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시선은 두 가지 의미로 인도(引渡이자 引導)된다.

손길이 닿는 사물들이 회화에 등장할 때, 그 사물들의 온도를 우리는 상상해 본다. 물건을 만지고 건드리고, 내 몸에 잠시 붙어 있다가 떠났을 때, 그 자리에 남는 온기를 떠올려 본다. 빈자리에 머무는 온기에 다양한 감정을 떠올릴 때, 감정은 손길이 닿는 것과 시선이 닿는 것이 만나면서 생긴다. 흑백의 만남은 풍경을 그린 작품에서 명암 대조와 침투, 다시 말해 닿음을 보여준다. <둥근 달>과 <겨울 비행>(두 작품 모두 2026)에서 시야에 잠깐 들어온 달과 비행기는 손의 움직임을 통해서 작가가 조금씩 지워나가고 주변을 세밀하게 칠하여 표현된 것이다. 흑백 대비가 화면을 가로지르거나 번지듯이 표현될 때, 작가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방식은 접촉에서부터 시작한다. 흑백의 만남 못지않게 근경과 원경, 순간과 서사는 신축 운동하듯이 보는 이에 의해 탄성과 활력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회화에 담긴 어느 순간은 가까이서 보는 대상 너머에 배경적 깊이와 시간적 서사를 펼칠 수 있게 해 준다.

붙잡는 손이 있는가 하면, 소원을 비는 손이 있다. 흑연의 어둠과 밝은 부분은 손의 반복을 통해서 칠해지고 흐려지고 지워진다. 피부나 불빛의 밝은 톤이 음영 변화를 보일 때, 어둠이 밝아지길 소망하듯이 표현된다. 이는 <소원>(2026)에 보이는 두 손—사실은 세 손과 겹친다. 왼쪽에 보이는 밝은 손, 오른쪽에 보이는 어두운 손, 그리고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이 순간을 기록한 촬영자의 손이 거기에 있다. 떠올리는 추억이 과거로부터 현재를 향한다면, 김영서의 이번 전시에는 현재로부터 미래를 향하는 소망의 시선을 찾을 수 있다. 이는 확대한 장면과 그 외연을 시선으로 따라갈 때 비로소 나타난다. 상상을 그려 나갈 때, 우리의 시선은 물건과 기억을 쥐고 싶어 하는 그들의 손길을 따르듯이 회화에 다가간다. 잘 보이지 않거나 조금 멀리 있어도,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선과 자세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하언이>(2024)처럼, 발꿈치를 들어 본인이 닿지 못하는 곳을 보려고 한다. 매일의 찰나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은, 설령 더 오래전의 과거일지라도 기념하고 싶은 시선으로 우리는 김영서가 바라본 귀(중)한 순간을 만난다.

전시 정보

작가 김영서
장소 이목화랑
기간 2026-07-01 ~ 2026-07-17
시간 11:00 ~ 18:00
화~금 11:00~18:00
토 11:00~17:00
일, 월 휴무
관람료 무료
주최 이목화랑
주관 이목화랑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위치 정보

이목화랑  I  02-514-8888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94 (가회동)

전시 참여 작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