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거칠지만 그 덕에 미세먼지가 잠잠한 틈을 타 햇살좋은 낮, 작업실 앞 산책길에 좋아하는 나무들의 안부를 살피러 나왔다.
아직 남아있는 지난 계절의 마른 잎들이 요란스럽게 데굴거리며 내 뒤를 따라온다. 귓가에 스치는 바람, 이 소리를 어떻게 그려볼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라디오에선 이 바람이 나뭇가지의 뿌리까지 흔들어 새싹과 꽃을 피워낼 거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직은 가지 뿐이지만 햇살과 바람으로 곧 하얀 꽃이 만개할 선유도의 벚꽃길을 강너머에서 바라보니, 마른잎들이 서걱거리며 겨울 끝자락의 여운이 담긴 화음을 내고 있어도 마음 속엔 벌써 환한 봄이 그려진다.
바람타고 흐르는 강물이 바윗가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그 작은 파도 소리에 바다를 그리워한다. 눈을 감고 그리면 바다가 보이네. 걷다가 멈추고, 걷다가 멈추고. 길 바닥에 우후죽순으로 피어나는 새싹들과 손톱보다도 작은 꽃들의 자태에 감탄하고 있으니, 이 거친 도심속에서도 생명의 싹을 틔워냄에 경이롭다. 봄이면 늘 이 생명력에 감동하고, 혹독한 겨울을 이겨냈음에 존경스럽다. 이 사소하고도 거대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봄 햇살에 등이 따뜻해져 온다. 새 봄에 마냥 넋을 잃고야 마네.
따뜻함을 화폭에 담아 바다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곳이 가진 강인한 생명력에 작게나마 치유의 힘을 보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