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서양화 석사
21세기 디지털 환경은 이미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미지는 더 이상 단순히 세계를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현실을 구성하고 대체하는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기능한다.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는 점차 흐려지고, 우리는 무엇이 ‘실재’인지 묻는 일조차 난감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지속되어 온 문제의식이자, 원본 없는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는 시뮬라크르 현상이 심화된 오늘날 더욱 절실한 질문이 되었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실재와 가상의 관계를 재고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미지적 현실’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이 탐구의 중심에는 ‘Avatar’라는 존재가 있다. Avatar는 나의 경험과 감정, 내면적 기억, 그리고 디지털 세계 고유의 질서를 동시에 품어내는 매개체이다. 화면 속에서 Avatar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서서 양쪽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그 사이에 존재하는 틈과 여백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실재와 비실재가 중첩되는 현대적 감각을 체험하게 하는 장치이자, 관객이 익숙한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일종의 감각적 프리즘으로 작동한다.
화면을 구성하는 형형색색의 큐브들은 이러한 감각의 질서를 물리적 형태로 가시화한다. 큐브는 개별적 요소로 존재하면서도 서로에 반응하고 연결되며 하나의 구조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들은 규칙과 변형, 밀도와 여백, 반복과 확장의 원리를 품고 있으며, 이는 현대 사회를 이루는 관계망의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큐브는 하나의 단위이자 전체를 구성하는 세포처럼 기능하며, 그 배열의 방식은 부분과 전체가 서로를 끊임없이 조정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이를 통해 관객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또 다른 층위가 어떤 논리로 이어져 있을지 상상하게 되고, 제한된 화면 속에서도 무한한 공간적 가능성이 생성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문(門)의 모티프는 공간의 상태—혹은 현실의 ‘열림과 닫힘’—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문의 열림 정도는 시각적 장면을 넘어 시간성과 사건성을 화면에 불러들이며, 그 자체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암시를 제공한다. 문틈으로 드러나는 공간은 완전한 해답이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에 대한 제안’이며, 관객은 열림의 폭만큼 세계를 상상하고 닫힘의 깊이만큼 또 다른 차원의 존재를 유추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계의 질서, 즉 비가시적 공간의 구조를 탐구하는 과정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색채는 작품 전체를 유기적인 체계로 엮는 조형적 언어이다. 각 색은 감정의 밀도와 심리적 흔들림을 담고 있으며, 화면 속 구조를 부드럽게 연결하고 리듬을 부여한다. 색은 공간을 확장하거나 응축시키는 에너지의 흐름으로 작용하며, 작품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정서적 풍경을 구성하는 중요한 층위가 된다. 이러한 색채의 작용은 구조적 형태와 결합하여 화면 속 공간을 더욱 입체적이고 다층적으로 드러내게 한다.
나의 작업은 이처럼 다양한 시각적 장치—Avatar, 큐브, 문, 색채—가 서로의 의미를 확장하며 가상과 현실의 관계, 실재의 의미, 현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반복과 확장, 구조와 틈, 색채와 심리의 균형 속에서 나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세계의 층위를 드러내고, 이미지적 현실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위치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화면 속 공간들은 비가시적 세계의 질서를 상상하게 하고, 그 사이를 오가는 감각은 결국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 방식으로 구축되고 인지되는지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이 작업들은 실재보다 더 실재적으로 작동하는 이미지의 체계 속에서, 실재와 비실재의 의미를 새롭게 묻는 여정이다. 이미지가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시대에, 나는 그 세계 속에서 불안정하게 위치하는 ‘나’의 흔적과 감각을 구조적 형태로 탐구해 왔다. 관객이 이 화면들 속에서 각자의 감각을 통해 새로운 공간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질문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또 다른 구조를 조용히 마주하는 경험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