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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 개인전

UNC갤러리   I   서울
도시의 호흡과 체온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미술평론)


“혼란은 우리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해 길을 잃게 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통해 다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사유의 길과 마주하게한다.”

-혜자, 작업노트 중에서-




혜자는 도시가 아니라 도시의 마음, 도시의 영혼을 그린다. 혜자는 고유한 숨을 내뿜고 꿈틀거리고 에너지로 넘치는 도시를 그린다. 도시는 살아있다. 하지만 그 살아있음, 거리와 광장, 공원과 빌딩들에 호흡을 제공하고 뜨겁거나 따듯한 것으로 만드는 힘, 체온, 분출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도시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예술가의 몫이 아니다. 예술가의 몫은 느끼고, 느끼고 더 치열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 안에서 통찰의 촉수가 자라날 때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혜자가 도시의 호흡과 체온에 대해 그렇게 해왔다.
적어도 2010년의 <Emotional city>까지, 혜자는 뜨겁고, 이글거리고, 이내 녹아내릴 만큼 달아올라있는 도시를 그렸다. 아마도 욕망의 도시쯤이었다. 끓어오르고 휘몰아치는 열기, 과도한 흥분상태, 녹아내리는 현기증, 그리고 그것들 모두를 하나로 옭아매는 욕망…, 아마 히포(Hippo)의 어거스틴(Augustine.354-430)이 생각했던 ‘지상의 도성(terrena civitas)’의 묘사가 이와 닮아있지 않았을까. 어거스틴은 말한다. 문명의 중심이었고 세계의 정상이었으며 역사를 미개와 미신으로부터 끄집어낸 당사자였던 로마는 “처음에는 조금씩 타락하다가 나중에는 격류처럼 난잡하게 무너져 내렸다.”
어거스틴의 지상의 도시는 도시개발로 창출된 부와 합법화된 탐욕으로부터 형태를 획득하는 후기현대의 도시로 유전되었다. 로마의 DNA를 지닌 강성한 도시가 토해내는 ‘습한 열기’와 ‘충동’은 심리적 불안과 혼돈을 배증시킨다.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무자비한 가해자의 메커니즘, 그것이 맬컴 마일스(Malcoim Miles)가 현대도시들에서 목격했던 진실이었다. 성공지대와 실패지대를 나누는 개발사업과 기업문화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야만적 자본주주의의 기호를 읽었다. 혜자도 2006년 재개발지역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그 야만의 기호, 그 안에 생명과 몰락의 요인을 동시에 지닌 역동적인 야만의 기호를 읽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하지만 2011년 그가 베를린에서 <Alexanderplatz>를 그리고 있을 때 그의 도시 사유는 이전과 같지 않았다. 혜자의 <Alexanderplatz>는 흥미롭게도 알프레드 되블린(Alfred Döblin)의 1929년 소설 <Berlin Alexanderplatz>와 사뭇 닮아있다. 가로로 긴 혜자의 <Alexanderplatz>의 왼쪽 절반을 차지하는 붉은 색조의 열기는 소설의 주인공인 프란츠 비버코프의 격하게 소용돌이치는 삶의 묘사인 것 같다. 이미 4년 형기를 마치고 교도소에서 출소한 비버코프는 친구 라인홀트의 배신으로 불구가 되고, 방황하다 포주가 되고, 매춘부 미체의 사랑으로 잠시 행복해지는 듯하다가 이내 지하세계의 암거래에 빠져들고, 살해당한 연인의 살인자 누명을 쓰고, 정신병원에 보내진다.
반면, <알렉산더플라츠>의 오른쪽 반은 혜자가 도시의 다른 진실에 눈떠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Alexanderplatz>의 연한 푸른 기운이 감도는 오른쪽 절반에서 도시는 평화로운 일상을 회복한다. 이 절반에서 도시는 예컨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가 <두 도시 이야기, A Tale of Two Cities>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떤 구원도 준비하지 않는 절망의 단서가 아니다. 디킨스는 도시를 그것이 최고일 때조차 언제나 최악인 어떤 것이라고 했지만, 혜자의 도시는 이제 최악일 때조차 의미를 지니게 되는 긍정의 기호로 조금씩 이동한다. 혜자의 도시는 이제 느긋한 산책과 거리공연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은 훨씬 덜 방해받는다. 여전히 삶의 덫에 걸려 넘어지고, 무의미의 늪에 빠지고, 고독으로 내몰리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파국은 오지 않을 것이다.
2010년에서 2011년으로 넘어오는 사이에 혜자의 회화에는 분명 변화가 있었다. 맥락이야 변함없이 현대도시를 사는 사람들의 생활의 편린과 그 심리적 추이다. 하지만 <Wandering Parade>나 <Reflective City> 시리즈는 이전의 <Emotional city> 보다 한결 밝은 색조와 톤을 어색해 하지 않는다. 장소들은 여전히 열기에 휩싸이고 사람들은 이글거리는 도시의 촉수에 찔리곤 하지만, 모든 것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덜 우울하다. 도시를 휘감았던 열기의 촉수들도 이전처럼 공격적이지는 않다. 장소들은 더는 녹아내리지 않는다. 거리가 내뿜는 호흡은 조금 따듯할 뿐이다. 스치듯 한 바람이 도시의 체온을 적절하게 낮춘다. 시각적 긴장감은 이번에는 정지된 것과 빠르게 흐르는 것 사이에서 발생한다. 많은 것들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경험과 기억들이 유기적으로 꼴라쥬되고 중첩된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하고 새로워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흐르는 시간을 산다. 도시는 언젠가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Christophe Blumhardt)가 말했던 것처럼 여전히 ‘사탄의 요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일은 더는 오늘과 같지 않을 것이다. 혜자의 도시에서 사람들은 이제 곧잘 광장에 모이고 시간과 변화에 자신을 맡기며 살아간다.
변화는 단지 표현의 차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변화의 발원지는 도시와 삶에 대한 작가의 인식과 사유 자체다. 2011년 이후의 도시는 이전처럼 상실과 절망으로 녹아내리기를 거부한다. 혜자는 환원주의적 사유에서 이전보다 더 자유롭다. 그는 이제 자유롭게 이미지의 채집자로 나선다. 수집된 이미지를 콜라주하고 상이한 공간과 시간을 몽타쥬하는데 별도의 규범이나 제약은 없다. 도시는 분할되었다 재구성되고 파편화와 집합 사이를 오간다. 각각의 분절된 것들은 다시 하나의 새로운 전체로 합류한다. 혜자는 자신의 표현력을 동원해 각각의 것들을 하나로 재맥락화하는 어떤 운명적인 힘, 도시를 도시너머의 그 무언가와 접속시키는 에너지를 시각화해낸다. 이 회화적 서술에 의해 장소들은 장소 이상의 것으로, 거리들은 일상의 산책을 넘어서는 삶의 감각과 관련지어진다. 혜자의 도시는 분절되고 파편화되는 동안에도 충분히 따듯하다. 그 호흡은 한결 가볍지만 지각을 넘어서는 어떤 이면의 세계까지 전달된다. 이렇듯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되는 것을 거부하는 도시의 진솔한 고백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이다.

전시 정보

작가 혜자
장소 UNC갤러리
기간 2016-11-24 ~ 2016-12-15
시간 10:00 ~ 18:00
휴관 - 일요일
관람료 무료
주최 UNC갤러리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문의 02-733-2798
(전시 정보 문의는 해당 연락처로 전화해주세요.)

위치 정보

UNC갤러리  I  02-733-2798
서울특별시 강남구 영동대로86길 6 (대치동) 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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