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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의 온도-관계측정의 미학

블루메미술관   I   경기
관계의 고정점 찾기

온도는 측정 가능한 것인가? 온도계가 발명되기까지의 역사를 다룬 <온도계의 철학>이라는 책에서 장하석 저자는 사물의 뜨겁고 차가운 정도를 재고 기록하는 도구가 만들어지기까지 과학의 역사는 매우 주관적인 것에서 시작했다고 말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수시로 변동되는 ‘혈온(사람의 체온)’을 온도 측정의 고정점으로 사용한 뉴턴을 비롯하여 17-8세기 서양의 여러 과학자들이 제시한 기준점은 ‘첫번째 밤 서리, 손을 넣고 견딜 수 있는 가장 뜨거운 물, 깊은 지하실’과 같이 가히 문학적이라 할 정도로 객관과 표준의 과학 밖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같이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인간의 감각이 온도 측정의 기준으로 사용되었던 데에는 온도계(thermometer)가 온도경(thermoscope)이라는 정성적인 측정장비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온도경은 온도의 서열척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량적인 하나의 수치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어떤 것이 다른 것에 비해 더 따뜻할 때 이를 가리켜준다. 온도를 관계의 언어로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온도가 오르면 액체가 팽창하고 차가워지면 수축된다는 감각기관의 경험이 바탕이 된다. 물에 적신 온도경 뿌리를 입으로 불면 온도경의 액체가 내려가는 현상을 보며 우리는 비에 젖은 옷을 입은 채 바람을 맞을 때 추위를 느끼는 경험을 떠올린다. ‘찬 온도’란 ‘차가웠던 경험’과 일치하는 것이다. 인간 감각이 온도경에는 제1의 표준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측정 가능한 것일까? 맞닿아 있는 살갗의 온도값으로 당신과 나 사이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는가? 그 깊이와 너비를 재어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일까? 객관적 수치로 소통되는 과학적 도구의 출발점에 주관적인 인간의 감각이 기반이 되듯 개별적인 이야기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듯 여겨지는 인간 관계에서도 누구나 소통가능한 고정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0도라는 온도가 어는 점이라는 기준점이 되기 위해 ‘차갑다’라는 너와 나의 촉각적인 체험이 먼저 바탕이 되어야 했듯 이 전시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추상적인 상호작용으로서만 존재하는 듯 보이는 인간의 관계성을 거리와 온도 같은 측량가능한 기준점을 가진 요소들을 통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경험치로 가늠해보고 소통해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때로 심해처럼 그 깊이와 너비를 헤아릴 수 없고 손안의 수은온도계로 그 뜨거움과 차갑게 식는 속도를 감히 측정하지 못하리라 생각하지만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 그 거리에 오가는 호흡의 온도는 사실 손바닥 안 누구나 가진 감각 안에서 모두 읽혀지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정성윤 작가는 기계장치를 만든다. 장치를 만드는데 필요한 설계도는 수치를 바탕으로 한다. 설계도의 눈금은 고정되어 있고 객관적인 수치와 연산을 기반으로 기계는 움직이고 작동한다. 그런데 작가에게 이 기계의 계산된 움직임들은 예측불가능하고 비가시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인간관계를 표상한다. 멀리서 보면 일렬로 서로 붙어있는 작은 원들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보면 닿을 듯 말 듯 빠르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검은 당구공들, 작은 틈을 사이에 두고 그 틈을 좁혔다 넓혔다 하며 위아래로 떨리듯 움직이고 있는 두 개의 큰 색면 기계장치는 위태로움, 안타까움, 허무함 또는 적당한 안정감 같은 감정으로 공유되는 사람 사이의 관계의 모습들을 떠오르게 한다. 심장 없이 수치로 작동되는 기계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는 체온을 지닌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만들어내는 거리를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정성윤의 움직이는 기계들이 맞닿을 수 없는 거리, 틈을 보게 한다면 백정기가 만들어내는 기계장치들의 출발점이 된 바셀린이라는 재료는 그 틈을 메우고 덮는 행위에 주목하게 한다. 그는 우리가 보통 피부에 덧바르는 바셀린을 두텁게 쌓아올려 투구나 헬멧, 갑옷과 같은 형태로 만들기도 하고 건물의 갈라진 틈을 메우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나의 가장 끝부분이자 타인 또는 세상과 만나는 시작점인 피부에 두껍게 발려진 그의 바셀린은 나에게 생긴 틈, 상처를 보호하고 치유하는 것이다. 나아가 고체의 기름이지만 보습작용을 하는 그것의 물질성은 메마른 땅의 틈, 사람사이의 갈등의 환경에 스며들어 흐르는 물의 순환, 회복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험실을 연상하게 하는 그의 과학적 도구들은 일견 객관적 측정을 위한 장치처럼 보이지만 이를 ‘심동(心動)장치’라고 정의한 한 평론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은 나와 너, 나아가 세상의 크고 작은 간극을 메우며 움직이는 에너지, 그 관계의 역학을 회로도와 같은 인과론적인, 감각으로 지각할 수 있는 가시적 장치들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백정기의 노란 바셀린 사진들 옆에 놓여진 김승영의 빨간 의자는 기억에 관한 것이다. 정성윤의 검은 기계장치와 마주보고 있는 이 낡은 철제의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연상하게 하는데 누군가의 자리로서 관객이 앉을 수 있게 되어있다. 차가워 보이는 철제의자에 앉는 순간 관객은 놀라게 되는데 이는 그것이 체온에 가까운 따뜻한 온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37.5라는 온도는 객관적인 물리적 사실을 넘어 관객 개인에게 과거의 경험에 붙어있는 전혀 다른 시공간을 불러들인다. 이는 그것이 접촉을 통해서 전달되는 사람의 존재에 관한 것이며 접촉은 사이를 연결하는 관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승영의 의자는 추상적으로 떠도는 기억을 붙잡아 앉히며 온도를 지닌 몸이 먼저 지각함으로써 시작되는 모든 관계들을 읽어보게 한다.

심아빈의 작품도 관객이 몸을 움직였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소통된다. 그가 만든 3개의 기둥은 사다리, 거울, 구멍 같은 장치를 통해 관객을 움직이게 만드는데 원기둥은 내려다보고 삼각기둥은 들여다보고 사각기둥은 올려다보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관객이 이와 같이 움직였을 때 실제로 보게 되는 것은 예상 밖의 상황이다. 사다리를 타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는데 물 속 같은 더 깊은 곳에 놓이게 되고, 머리를 들어 기둥의 윗면을 보겠거니 했는데 오히려 바닥을 보게 된다거나 기둥의 내부를 은밀히 보려 고개를 집어 넣었는데 내 모습과 맞닥뜨린다거나 하는 식이다. 공간적인 인과관계가 뒤집히는 것이다. 이처럼 앞뒤, 위아래, 안과 밖 같은 물리적인 위상관계를 뒤집는 관객의 움직임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각기 다른 시공간에 대한 기억 속에서 해석되고 가늠되어지는 인간관계의 거리와 위상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심아빈의 기하학적 도형기둥들이 부피를 지닌 덩어리로써 관계성의 해석에 관한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한다면 리즈닝미디어는 공간을 비우며 부피와 형태가 없는 빛을 통해 비가시적인 상호작용으로서의 관계성을 이야기한다. 전시장 중간에 놓인 11개의 계단은 연결공간으로 이곳을 오르내리는 관객의 발걸음과 생각을 늦춘다. 비어있는 공간과 같은 이 계단의 어느 지점을 지날 때 조명이 켜지며 관객이 선 자리를 비춘다. 조명의 환한 빛은 관객과 관객간의 거리를 드러내고 발열하는 빛은 그 따뜻한 온도를 같이 경험하고 하고 있는 관객들 사이에 접점을 만든다. 한 줄기 빛이 무형의 빈 공간을 한 순간 촉각적이고 심리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관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작고 사소한 계기가 관계망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리즈닝미디어의 빛이 신체적인 공간을 통해 나와 상대의 관계를 경험가능한 요소로 읽어내게 한다면 김다움은 깜박거리는 빛으로 구성된 가상의 공간, 컴퓨터 화면을 통해 형성되는 관계의 언어들을 이야기한다. SNS상의 대화창에 짤막한 문구들로 오가는 대화들은 쌓여가는 것인가 흩어져버리는 것인가. 직접 대면하지 않기에 더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기도 하지만 얼굴없이 쌓인 말들로 형성된 관계의 무게는 중력을 거슬러 부유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런 온라인상의 만남과 물리적 공간인 전시장에서의 관계맺기를 비교하는 작가와 어떤 한 남자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작품에서 화자는 모니터 화면 속으로 들어가며 대화를 시작한다. 화면 안으로 가상의 공간이 펼쳐지는데 그 안에는 실제 공간처럼 질감이 있고 시간에 따른 움직임이 있다. 촉감과 시선의 교환이 있는 실제 만남처럼 인터넷 공간에서의 그것 또한 때로 헐겁고 촘촘하며, 금속 같은 차가운 매끈함과 맞잡은 손의 온기 같은 관계의 질감이 존재함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관계의 인터페이스들도 다양해지고 그만큼 사람 사이 관계의 양상들도 제각각이다. 나와 너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각자의 서사이고 각자의 방법으로 해석되고 처리된다. 이 전시는 마주한 마음과 마음사이의 거리가 눈금자처럼 정확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재어볼 수 있는 한 뼘의 거리를 기준으로 멀고 가까움을 측정해볼 수 있으며 그 너비 사이에 존재하는 뜨겁고 차가운 관계의 온도값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함께 돌아볼 수 있음을 얘기한다. 마음의 무게는 측량할 수 없다. 수시로 변하는 사람사이의 관계도 하나의 수치로 고정할 수 없다. 그러나 찰나의 관계안에서도 우리는 그 관계의 모양과 두께를 몸으로 마음으로 느낀다. 그 공감의 고정점을 함께 볼 수 있고 만져질 수 있게 하는 작품들을 통해, 관계의 측량가능성을 통해 삶 위의 수많은 관계들이 새로이 함께 소통될 수 있음을 이야기해본다.

전시 정보

작가 6명
장소 블루메미술관
기간 2016-10-01 ~ 2016-12-31
시간 11:00 ~ 18:00
일요일 - 13:00~18:00
휴관 -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문의 031-944-6324
(전시 정보 문의는 해당 연락처로 전화해주세요.)

위치 정보

블루메미술관  I  031-944-6324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59-30 블루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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