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T

24시간 혜택! 어떤 작품이든 33,000원 >

신규고객 체험 특가

hey

지금여기   I   서울
고천봉(高千峰) 일행 표류사건

“제주목(濟州牧) 좌면(左面) 조천관리(朝天館里)에 거주하는 양인(良人) 고천봉은 일행과 함께 조천포에서 출항했다. 1744년 9월 24일 그들이 동선한 배는 추자도와 제주 해역에서 바람과 해류의 영향으로 표류를 시작했으며, 표류 13일 째 되는 날 일본 큐우슈(九州)의 히젠슈(肥前州), 고토 해변(五島境)에 표착했다. 이 과정에서 동선인 4명이 익사했고, 생존자들은 1745년 5월 20일 표착 225일 만에 조선 동래부로 송환되었다.”*

하나,

모든 사진은 모호하다. 사진이미지는 “최선의 독해가 불가능한 수수께끼이다.”(드브레) 즐기는 것이 이 놀이에 대한 기본 예의이다. 수수께끼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는 최선을 다해 노는 것이다. 고천봉은 그런 예의를 갖춘 인물이다. 재치와 익살이 필요한 곳에서 답을 찾고자 애쓰며 진지해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음미하고 뒤틀고 되묻고 무시하고, 그래서 답안 제출을 최대한 지연시키거나 거절하는 것, 이것이 그가 사진 그리고 카메라와 놀며 즐기는 방식이다.

그의 두 번째 사진집 타이틀 <Tree Body and Snow>―나는 눈 덮인 교수대(hanging tree)를 떠올렸다―는 ‘생각하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아니, 갖고 있었다. 한자어 ‘想’, 그는 이 상형문자를 분해해서 그 조각난 그림들을 재조립한다. 木-나무-tree, 心-마음 혹은 정신-몸 혹은 육체-body, 目-눈(eye)-눈(雪)-snow. “마음(心)과 몸(body)은 하나이며 정신과 육체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그의 주역 운운하는 설명을 받아들이면, ‘생각(想)’은 ‘tree, mind, body, eye, snow’로 흩어지고 다시 모여 새로운 형상을 얻는다. 3개 국어를 동원한 이 말장난(pun)은 그가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선택하고 배치하는 편집 단계에서 다시 발동한다.

흑석동의 작고 창백한 새벽달은 크리스의 달랑 하나 남은 윗니를 곁눈질한다. 그 이빨이 눈치 채는 순간, 서울 주택가의 새벽은 독타운의 전설적 스케이트보드 제작자의 말년을 대면한다. 고천봉이 채집한 사진들은, 이렇게 서로 이웃하면서, 각 장소들이 갖는 표정들을 교차시키고 뒤섞는다. 그가 프레임 안에 숨겨둔 혹은 뒤늦게 찾아낸 어떤 기호들이 ‘서로 이웃’이 되는 자격(단서)을 교환하는 것이다. 원숭이 엉덩이와 사과가 납득할 만한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붉다는 조건만으로도 ‘끝말’의 연쇄적 관계를 이어갈 수 있듯이, 그의 사진 이미지들은 애초에 선택된 장소와 시간 그리고 의도와 동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 속으로 연결되며 분산된다.

담배가 필요한 새벽에 슬리퍼를 끌며 나갈 때, 스케이트보드 위에서 거리를 미끄러질 때, 친구들과 새벽 클럽에서 휘청거릴 때도 카메라는 늘 그의 손에 들려있다. 화장실 변기에 주저앉아 있을 때조차 그는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수행한다. 노래방에서 친구에게 넘긴 카메라에 잡힌 자신의 열창하는 장면 역시 그의 ‘의도’ 안에 있으므로 자신의 작업이라는 ‘개념적’ 항변을 한다. 이렇게 기록된 사진들은 때로 흔들리거나 부족한 노출을 갖고 있다. 그는 그 사진들을 버리지 않고 실수들을 드러내기로 한다. 찍은 자의 부주의를, 기계적 한계를, 피할 수 없었던 촬영조건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똑딱이 필카’로 시작한 그의 사진 찍기는, 갈아탄 몇 개의 기종을 포함해서, 여전히 35밀리 필름 카메라와 함께 간다. 실수조차 그대로 인정하고 ‘지우기(erase)’를 허락하지 않는 것, 네거티브의 형태로 물질로서의 ‘원본’이 ‘저장(save)’된다는 것, 필름의 화학적 이미지가 디지털 사진 이미지보다 자신의 눈맛을 충족시킨다는 것 등이, 그가 편의점에서 구입하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에서부터 최근에 장만한 중고 라이카까지를 두루 섭렵하는 이유이다. 촬영과 무선 전송이 동시에 처리되는 환경에서, ‘화학’이라는 물질의 영역을 ‘개념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그는 짧게 대응한다. “be classic be old school”

둘,

21세기의 고천봉은 20세기 후반에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상하이의 영어권 외국인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외국인 거주지역에서 살았다. 집 밖을 나서면 영어와 만다린어와 상하이어를 사용했다. TV, 책과 신문 등을 통해 한국어를 익혔던 그는 교포 2세를 위한 서울의 한 외국인 고등학교에서 두 학기 동안 정규과목으로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의 요구대로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들로 ‘생각’했다. 말과 글로 자신의 생각을 옮길 때 그는 동시에 세 개의 언어를 활용한다. 동일한 메시지에 대해 각 언어들이 갖는 표현들을 나열해보고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 출력하는 것이다.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선택의 폭이 넓은 만큼 그가 정주할 수 있는 장소 선택의 폭도 넓다. 상하이를 베이스캠프로 두고 서울과 로스앤젤레스, 뉴욕 그리고 런던 등으로, 그는 이동한다. “나는 이곳에 있었다.”라는 대사는 스냅사진을 찍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독백이자 방백이다. 고천봉은 자신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감추지 않는다. 그는 그 상황들을 ‘어떻게’ 묘사해야 하는지에 집중한다. ‘낯설게 하기’―이 말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다―는 그에게는 어떤 전략이 아니라 대상을 포착하는 체화된 감각일 뿐이다. 그는 사진들의 배치(편집)에서 그 효과를 키우면서 사진이미지의 장소성이 만들어내는 흔적들을 자신만의 맥락으로 재구성한다.

“언어는 특정한 발화의 맥락에서, 그 코드를 공유하는 한에서 통용된다.”(야콥슨) 비문(非文)을 허용하고 때로는 필수로 요구되는 언어영역이 시(詩)와 암호문이다. 사진은 산문보다는 시에 가깝다. 그것이 일상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메시지를 실어 나르기 때문이고, ‘코드’를 감춘 채 또는 제거한 채, 해석을 기다리거나 무시하기 때문이다. 세계를 사각형의 단면으로 떠낸 이미지는 이 세계이면서 동시에 이 세계가 아닌 ‘수수께끼’이며 ‘코드 없는’ 암호문이다. 그가 사진이미지와 시(어,語)의 유사성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다중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에게 사고의 폭과 행동반경을 넓혀주겠지만, 그것이 바로 언어 소통의 깊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언어는 생각의 체계를 구성하고 한 개인의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하나의 언어가 구성하는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체험과 이해 없이는 소통은 어려워진다. 고천봉의 ‘혼란’―그는 일정 기간 ‘이인증(depersonalization)'으로 상담을 받았다―의 일부분은 이러한 ’소통의 깊이‘ 문제와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이미지를 상대할 때는 언어의 벽을 넘나들 수 있어서 편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을 때 언어화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 내게 평화를 준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20대에 ’이미지에 빠져 살았던‘ 배경이기도하다.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모든 사진이미지는 ‘표류’한다. 유동적이고 모호한 사진의 의미를 묘사하려는 시도들이 드물지 않게 수사(rhetoric)로서 ‘바다’의 이미지를 빌려온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이미지라는 ‘확실치 않은 기호’의 잡히지 않는 의미를 고정시키는 사회적 ‘기술(technic)'로서의 언어의 기능을 말하면서 ‘정박(anchorage)’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미지와 관련하여 “말은 장면의 요소들과 장면 그 자체를 순전히 그리고 단지 동일시하는 것을”도울 뿐이라고 말한다. 표류하던 의미가 언어의 ‘감독과 지시’ 아래 ‘닻(anchor)’을 내리고 (사회적으로) 안전한 위치에 ‘정박’하는 것이다.

표류는 재난에 뒤따르는 상태이다. 태어남 자체가 이미 재난이다. 한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건이며, 사건 이전으로 그는 되돌아갈 수 없다. 사건은 사후적으로만 인지되는 것이다. 18세기 조선의 고천봉은 ‘표류사건’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미지의 물결들은 모든 언어의 해변을 핥는다―그러나 그것들이 언어는 아니다.”
(레지스 드브레)

셋,

그는 보드 위에서 “파도를 타고 있다(surfing)”

그러니까, ""놀고 있다(playing)""


레이먼드 신 a.k.a. 신동파(사진가)

-----------
*<조선시대 표류노드의 시각망>에 있는 ‘사건별 표류 노드 목록’의 ‘번호 E497’을 풀어서 쓴 것이다. 조선후기의 자료『표인영래등록, 漂人領來謄錄』에는 일본으로 표류했던 제주도인의 표류사례 30건이 기록되어 있다. ‘고천봉(高千峰) 일행 표류사건’은 그 사례들 중 하나이다. 출처: http://www.digerati.kr/mediawiki

전시 정보

작가 고천봉
장소 지금여기
기간 2016-09-18 ~ 2016-10-02
시간 13:00 ~ 19:00
휴관 - 월요일
관람료 무료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위치 정보

지금여기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8길 32 (창신동)

온라인 특별 전시관

전체 보기
국내 인기 작가들의
작품 56,868점을 감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