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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정원-자연으로부터

CN갤러리   I   서울
사유의 정원 - 자연으로부터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작가 허 강은, 이번 전시에서 오랫동안 천착해 왔던 ‘사유의 정원 – 자연으로부터’라는 일관된 주제 의식을 평면, 입체, 영상, 설치 등의 다매체를 통해 그간의 실험적 조형 언어를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그가 1981년부터 현재까지 그룹 야투(YATOO, 野投)’ 일원인 자연미술가로 활동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화이트 큐브에서 실천하는 자연미술전이자, 자연의 정수를 듬뿍 담은 화이트 큐브의 정원(庭園)에서 펼쳐 보이는 자연 미학의 현장이라고 할 만하다.



I. 자연으로부터

허 강의 작업은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리스어로 ‘자연’을 의미하는 피지스(physis)나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한자어 자연(自然)은 “인간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것, 있는 그대로의 것”을 뜻한다. 흙, 물, 공기와 같은 원초적 본성을 품은 자연으로서 말이다. 따라서 자연의 존재론적 본성이란 미생물로부터 인간을 포함하는 지구 존재의 생성, 소멸과 순환의 질서와 같은 것이다.

허 강은, ‘최소한의 예술적 개입을 통해서 자연의 본성을 성찰하는 야투의 자연미술 운동과 더불어 세계 각국의 자연환경 속에서 자연미술을 실천해 온 글로벌노마딕 아트프로젝트에 두루 참여해 오면서도 독자적인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 자연을 변용한 실험적 현대미술에 매진해 왔다. 즉, 그의 자연미술, 생태미술이 최소한의 인공적 개입으로 순연(純然)한 자연의 생성, 소멸과 순환의 본원적 질서를 드러내는 일에 집중했다면, 그의 독자적인 실험미술은 산업 소재와 복합매체를 작업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되 자연의 변용을 통해 자연 미학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미술은 자연 본성에서 온 것이되, 자연 현상의 변주와 조형적 실험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존(coexistence) 혹은 공생(symbiosis)에 집중한 것이라 하겠다.

“서로 다른 종의 개체들이 밀접한 관련을 맺고 살아가는 것”을 공생이라고 할 때, 그것은 자연의 요청이자 선물과 다를 바 없다. 공생이란, 자연의 안정과 더불어 인류 문명이 형성되었던 홀로세(Holocene) 시대나 인간이 자연을 바꾸는 행위자로 등극했던 인류세(Anthropocene) 시대에서도 인간에게 폭력을 당했던 자연이 보복 대신 인간에게 전하는 유의미한 제안이자, 선물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자연은 자율성의 기반 아래 공존과 공생의 질서를 그 자체로 품어 안은 까닭이다. 칸트(E. Kant)가 ‘미적 판단력 비판’에서 언급했던 ‘목적 없는 합목적성’으로서 말이다.

따라서 ‘자연의 부분’일 뿐이라는 존재를 망각한 채 자연을 정복하고 도구화해 왔던 인간이 자연의 제안으로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책무인 ‘공생’은, 철학자 라투르(Bruno Latour)와 문화인류학자 해러웨이(Donna Haraway)가 언급했듯이, 가이아세(Gaia-cene)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바이러스, 동식물, 기계가 얽혀 있는 관계적 생태’의 시대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작가 허강은 자연의 공생 제안을 겸허히 수용하고 그것을 시각화한다. 그는 금속, 합성수지, 영상 등 산업화의 비자연적 재료를 재맥락화해서, 역으로 자연 본성에서 발원하는 자연 미학을 탐구하고, 비자연의 현실적 맥락 위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이라는 주제 의식을 탐구한다. 즉 문명과 자연의 충돌이라는 오늘날의 ‘인류세’ 또는 ‘가이아세’의 컨텍스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되, 문명 비판과 생태적 대안을 동시에 탐구한다.

작품을 보자. 푸른 바탕색이 깔린 정방형 캔버스 위에 흰색으로 그린 커다란 꽃송이 옆에 기다란 캔버스 위에 그린 버드나무잎을 병치한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 작품이나 검은색 바탕 위에 식물을 그린 다수의 작품 그리고 정방형 캔버스 위에 금분으로 그린 식물 작품은 회화가 당면한 식물성의 자연 미학을 유감없이 선보인다. 또한 패널 위에 캔버스 천을 입히고 그 위에 스테인리스 스틸 판을 레이저 커팅 기법으로 재현한 거대한 꽃 한 송이를 올린 부조적 회화도 ‘자연으로부터 기인하는 식물성의 자연 미학’을 드러내기에 족하다. 두꺼운 스테인리스 스틸 판을 잠자리 날개 형상으로 잘라서 세워놓은 거대한 장소 특정성의 투과체 조각은 또 어떠한가? 잠자리 날개 형상은 식물의 잔잔한 잎맥과 동물, 곤충의 미세한 혈관 이미지를 스테인리스 스틸이라는 재료 위에서 한데 공유하면서 인공의 비 자연과 보편적 자연의 만남을, 그리고 자연주의 정신과 미학을 재맥락화한다.

이렇듯, 자연으로부터 주제를 견인한 허 강의 작품은 자연과 비 자연 그리고 인간과의 공생의 메시지를 전한다. 보라! 철판을 오려내 만든 나뭇잎 설치는 마치 생선의 뼈 같기도 하다. 또 다른 투과체의 철판 조각인 인간 형상의 내부에는 나뭇잎을 매달고 있는 굵거나 얇은 나뭇가지들이 마치 혈관처럼 채워져 있다. 이러한 인간 형상을 주황빛 바탕의 회화로 담은 작품에는 인간 형상 옆에 거대한 나무가 서 있기도 하다. 이처럼 나뭇잎과 생선 뼈의 이미지가 맞물리거나 식물성의 잎맥과 동물성의 혈관이 중첩되고, 자연(동식물)과 비 자연(산업 재료와 문명), 그리고 인간을 만나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허 강의 작업은 궁극적으로, “생태학적 사유는 상호 연관성을 사고하는 것”이라는 모통(Morton)의 주장처럼, 만남과 상호 연결성의 생태미학을 향해서 전개되어 나간다.



II. 사유의 정원에서

허강의 이번 전시는 생태미학을 실천하는 ‘사유의 정원’으로 자리매김한다. 전시장 천장에 부유하듯이 매달린 거대한 한지 연꽃들이 군집을 이룬 장관 아래 명상하는 듯한 표정의 커다란 인물 두상이 자리한 작품을 보자. 연못의 심층 깊이 잠입한 인간의 고뇌 가득한 성찰이 엿보이는 이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과 공생에 관한 근본적인 생태 미학을 함유한다.

생각해 보자. ‘정원’이란 마치 공원이나 식물원처럼 인간이 문명의 현실 공간 안에 파종(播種)과 재배처럼 인위와 인공의 방식으로 만든 ‘반(半) 자연’이자, ‘의사(擬似) 자연’이다. 주지하듯이, 생태학이라는 용어가 ‘집, 서식지, 생활 환경’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ïkos)와 ‘학문, 담론’을 의미하는 로고스(logos)의 합성어라는 점에서, 생태학은 그 출발부터 비자연 혹은 인공이라는 문화의 영역을 함유한다. 생태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으로 인식되지만, 실제의 생태학은 ‘자연뿐 아니라 문화의 상호 침투’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오늘날 가이아세에, 문명의 현실계는 푸코(Michel Foucault)가 언급한 것처럼 인공과 자연이 뒤섞인 혼성의 ‘페르시안 정원(le jardin persan)’과 같은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 Heterotopias)이자,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Théorie de l’acteur-réseau)이 논증하는 것처럼, 이미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들이 관계적 만남으로 얽혀 있는 하나의 혼종 생태계다.

자연주의에 경도된 채, 인간의 이성을 비판하고 탈인간중심주의를 지향했던 네스(Arne Næss)의 심층생태학(Deep Ecology), 가타리(Félix Guattari)의 정신생태학(Mental Ecology), 메이시(Joanna Macy)의 영적생태학(Spiritual Ecology)과 달리 오늘날 생태학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인간의 이성을 폐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생태학적 질서를 위해 최소한 지녀야 할 ‘주요한 무엇’으로 간주하는 북친(Murray Bookchin)류의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을 지향한다. 즉 오늘날의 사회적 위계와 지배 구조에서 생태적 공동체성(Eco-communality)을 회복하는 과업이 그것이다. 따라서 비자연과 자연이 혼성된 가이아세에 필요한 것은 여전히 인간의 이성과 사유적 실천이다. 인공을 내세우는 예술이 여전히 자연주의 미학을 성취하는 까닭도 비 자연과 자연이 이루는 공생이라는 것이 인간의 최소한의 반성적 성찰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작가 허강은 마치 하나의 정원처럼 비자연과 자연(혹은 라투르식으로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이 공생하는 오늘날 현실에서, 인간의 이성과 사유를 화두로 쥔 채, 자연 재난을 도래케 한 현대인의 자기반성적 성찰을 통해서 나름의 생태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비 자연의 현실적 맥락 위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이라는 주제 의식을 현대적 조형 실험으로 탐구하는, 이른바 ‘사유의 정원’이 그것이다. 허강의 ‘사유의 정원’은 자연을 성찰하는 ‘지금, 여기’의 현실계에 자리한다. 따라서 그의 ‘사유의 정원’이란 화이트 큐브라는 물리적 전시 공간이기도 하지만, 신화와 설화의 서사를 탐구하는 비물리적 공간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작품에서 달(月)은 이러한 현실계와 현실 너머의 상상계를 공생이라는 테마로 아우르는 주요한 메타포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벽면에 커다란 달의 영상을 투사하고 바닥에는 푸른 연못 혹은 호수를 연상케 하는 조형물 안에 달의 형상을 선보이는데, 이 주위로 동양 천문과 역법에서의 12지지(十二地支)를 연상케 하는 열두 마리의 토끼 형상의 조각을 설치해서 시간적 순환과 우주의 질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도 “달 안에 토끼가 산다”와 같은 달과 관련한 오랜 설화를 연극적 장치로 시각화한다.

지구의 자연 위성인 ‘달’은 스스로 빛과 열을 내는 항성인 ‘별’과는 다른 존재이지만, 태양광을 반사하면서 공생의 빛을 비추는 존재임을 상기할 일이다. 달은 여전히 계수나무와 옥토끼가 산다는 낭만적 상상을 품어 안은 존재이자, 이러한 상상을 통해 인간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주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달을 시각화하는 허강의 예술이란 따스한 공생의 메시지를 전하는 생태학적 실천이 아니겠는가?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했던가? 조선 후기 퇴계학의 대가인 정채(鄭采) 시인이 귀래정(歸來亭)이라는 정자에서 읊은 한 시(詩) 구절인 이것은 직역하면 “만(萬)개의 시냇물과 밝은 달의 주인공”을, 의역하면 “세상의 모든 강물과 밝은 달빛 속에서 나는 그 존재의 주인”을 뜻한다. 정조(正祖)도 ‘자연 속의 주체적 인간을 선언’하는 것으로 인용한 바 있는 이 구절은 오늘날 생태 철학자들에게서 ‘인간은 우주의 부분이며, 그 속에서 본래의 존엄과 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주체’라는 선언으로 해설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철학자 신영복은 이 구절에서 만천명월을 다음처럼 하나(보편성)와 다수(다양성)의 존재론적 관계를 사유하는 철학적 은유로 읽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달은 하나이지만, 그것이 비치는 강물은 만(萬)개이고, 달빛은 모두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그달은 하나다. 바로 그것이 존재의 진실이고, 관계의 철학이다.” 즉 ‘만천명월’은, 신영복의 철학에서 개체 중심의 서양 존재론 대신, 관계 중심의 동양 존재론을 증명하는 철학적 은유임과 동시에, 그것을 전유하는 허 강의 작품에서는 공생의 메시지를 전하는 하나의 아포리즘(aphorism)으로 작동한다.

그래서일까? 허 강은 2000년대 이래로 다양한 재료로 제작한 ‘빛나는 커다란 달’을 배나 기차에 실어 세계 각지로 이동하는 노마딕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고 또 진행할 예정이다. 그간 제주도 해변, 낙동강, 금강, 순천만 습지 등에서 달 조형물을 배에 실어 이동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불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독일 베를린까지 14,400km를 기차에 달을 실어 횡단하거나, 인도 서북부 구자라주(Gujarat State) 소금사막을 달과 함께 여행하기도 하였다.

하나의 달이 이 땅의 여러 곳을 비추듯이, 그리고 달이 태양과 지구의 관계 속에서 이지러지고 다시 차기를 반복하듯이, 허 강의 작업에서 만천명월의 아포리즘은 일관성 속에서 ‘변화’와 ‘이동’을 지속한다. 그것은 ‘사유의 정원’이라는 메타포와 함께한다. 하늘의 별자리를 음각으로 담은 원형의 철판을 배경으로 스테인리스 스틸을 이어 붙여 만든 옛 선비의 도포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장면을 형상화한 작품은 대우주(대자연) 속 소우주(자연)로서의 인간의 존재적 위상을 시각화한다. 우주의 질서 속에서 인간 아닌 다른 존재들과 상호 작용하는 공생의 사유 존재! ‘자연에 대한 인간(인간의 사유)’은 결코 폐기할 것이 아니라 명상과 반성적 성찰을 지속하면서 견지해야 할 최소한의 존재론적 덕목이 된다.



III. 에필로그

허강의 작업에서 ‘자연으로부터 발원하는 사유의 정원’이라는 작품 세계는 이형 동질의 다원화된 복합매체를 통해서 ‘만천명월’이라는 동형 동질의 자연 미학을 현현하게 만든다. 즉 하나와 다수가, 보편과 특수가,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관계 중심의 동양 존재론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자연 미학은 식물 이미지의 회화와 산업 재료로 만든 다양한 조각과 설치물에서뿐만 아니라, 농부가 사용했던 호미나 괭이와 같은 발견된 오브제로 금빛의 인간 형상을 만들어 선보이는 다양한 오브제 미술에서도, 그리고 야투의 자연미술과 노마딕 아트프로젝트를 통한 생태미술에 이르기까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색상의 작은 원판들이 벽면에 멀티플 아트 형식으로 가득 집적된 추상적 설치 작업은 어떠한가? 조명 설치를 통해 여러 모듈이 벽면에 유려하고도 다양한 색상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조화와 공생의 장관을 보라! 이 작업은 그의 ‘사유의 정원’이란 결코 자연 이미지를 재현한 형상성에만 국한되지 않는 조형 세계임을 방증한다.

결론적으로 허 강의 작업은 자연으로부터 왔으되, 자연과 비자연, 물리적 공간과 신화의 공간, 현실계와 상상계, 구상과 추상을 만나게 하면서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그리고 ‘자연-비자연-인간-비인간-예술’ 사이에서 관계 중심의 존재론적이고 생태적인 ‘공생의 미학’을 지속해서 탐구해 나가는 실험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전시 정보

작가 허강
장소 CN갤러리
기간 2025-11-12 ~ 2025-11-23
시간 10:00 ~ 18:00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합니다.
관람료 무료
주최 허 강
주관 허 강
후원 충청남도, 충남문화관광재단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문의 010-9406-4436
(전시 정보 문의는 해당 연락처로 전화해주세요.)

위치 정보

CN갤러리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5길 56-7(소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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