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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너머, 거듭된 붓질을 따라

CN갤러리   I   서울
풍경 너머, 거듭된 붓질을 따라:
이만우 회화론


풍경을 재현하지 않는 회화

만개한 흰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얇은 붓질이 여러 겹 겹쳐지고 가지와 꽃잎은 한 방향으로 기운다. 이만우의 〈새가 되어 날다–산책길에...〉(2024)는 단순한 봄날의 정경을 그리지 않는다. 시선은 꽃과 잎, 공기의 흐름을 따라 유영한다. 화면은 흩어진 시선의 파편들이 스치며 부유하는 공간으로 펼쳐진다. 이러한 구성은 풍경을 유동적 체험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이만우의 회화는 특정한 시점이나 구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중첩된 시선은 켜켜이 얹히며 하나의 응축된 형체를 만든다. 그 안에는 흔들림과 잔광, 계절의 미세한 온기가 남아 있다. 그것은 외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스며든 인상을 되살리는 행위에 가깝다. 멈춰 바라보는 응시가 아니라, 느린 침투처럼 내면을 건드리는 일이다.

〈이른 저녁 산책길에 본 이름 모를 꽃〉(2021) 연작은 풍경이 인상으로 번역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형태나 정보가 아니라 산책 중 마주한 찰나의 인상이다. 작가는 식물의 윤곽보다는 저녁 공기의 부피감과 시선이 맴돈 지점을 천천히 더듬는다. 노란빛은 화면을 부드럽게 물들이고, 붓질은 중심 없이 흘러가며 시선을 붙잡는다. 이 회화는 무엇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잔상이 우리 안에 어떻게 남아 있는가를 조용히 되묻는다. 또한, 〈밤나무·사람들〉(2025)는 충남 공주의 밤나무 숲을 촬영한 신민혜의 사진에서 출발하지만, 회화 속에서는 인물과 풍경이 한 덩어리처럼 엉겨 있다. 반복되는 밤송이와 잎사귀, 교차하는 붓의 움직임은 인물 간의 거리와 정서적 긴장을 암시하듯 흐르고 진녹색의 그라데이션은 장면 전체에 감정의 농도를 더한다. 이 회화 역시 자연을 배경으로 삼기보다, 그 안의 인간 군상이 어떻게 조용히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인물과 식물, 배경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이들은 분리되지 않고, 같은 흐름 안에 함께 있다.

풍경이 아닌 것들을 위한 회화

〈꽃도 아닌 것이 나무인 것처럼...☆〉(2025)는 이만우 회화에서 보기 드물게 장식성과 유희성이 전면에 드러난 작업이다. 작가는 익숙한 형태의 재현을 유보하고, 시각적 충돌과 구조적 어긋남을 전략적으로 수용한다. 화면을 이루는 잎사귀들은 하나의 식물에서 파생된 듯하지만 방향과 색조는 분산되고 중심 없는 붓질은 식물과 패턴, 형상과 장식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 결과 화면은 하나의 장면이라기보다 불균형한 시각의 파편들이 충돌하는 장처럼 펼쳐진다. 특히 주목할 점은 회화의 물리적 틀이 이미지 내부로 통합되었다는 점이다. 액자는 단순한 외곽 장식이 아니라 화면의 일부로 작동하며, 전시 환경 자체를 조형 언어로 흡수한다. 화면 속에 희미하게 숨겨진 별 모양 기호(☆)는 처음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관람자의 시선을 살짝 흔들며 다시 화면을 탐색하게 만든다. 이 작은 혼란은 회화가 반드시 정서적 몰입을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작가의 아이러니한 제스처이자, 탈감정적 유희에 가깝다. 이 작업은 비례와 질서의 미학보다는 오히려 어긋남과 장식적 과잉 속에서 회화의 외연을 다시 그리는 실험으로 읽힌다.

〈풀잎 분수〉(2025)와 〈새들처럼...〉(2025)은 흩어짐보다는 흐름에 가깝다. 시선은 풀잎과 수면 사이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가고, 작가는 그 잔상 위에 점묘처럼 입자를 얹는다. 화면은 파장처럼 번지고, 관람자는 그 움직임 속에 시선을 잃는다. 〈응시〉(2023)는 물속에 흔들리는 풀을 바라보다 우연히 떠오른 하트의 형상에서 출발한다. 식물을 닮은 이미지 안에 숨겨진 하트는 오래 응시할수록 천천히 드러나며, 수동적인 감상이 아니라 ‘찾아내는’ 경험을 유도한다. 이는 자연 속 우연한 발견을 회화의 구조로 전환한 예이며, 응시를 멈춤이 아니라 탐색의 운동으로 확장시킨 장치이기도 하다. 〈꽃도 아닌 것이…☆〉가 시선을 흩뜨리는 회화라면, 〈풀잎 분수〉는 시선을 머물게 하고 다시 보게 만드는 회화이다. 하나는 장식과 구조의 긴장을 극대화하고, 다른 하나는 형상의 여백을 통해 시간을 부드럽게 늘려간다. 이 두 작업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선을 재조정하며, 회화가 감각의 위치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을 꿰메는 회화

이만우는 빛의 떨림, 바람의 흐름, 식물의 반응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회화 속 시간에 스며들게 한다. 그 감응은 단순한 자연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대전과 공주를 오가며 축적된 장소의 체험, 도시 외곽에서의 생활, 건설 현장에서의 노동이 그 바탕에 있다. 도시의 이질적인 리듬은 그의 화면에 긴장과 서정을 동시에 얹으며 풍경을 배경이 아닌 삶의 단면으로 다시 그려낸다. 이만우에게 예술은 하나의 제도나 매체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작업실에서 제작한 회화뿐 아니라 거리에서 마주친 장면, 손에 쥔 사물, 일상의 제스처들 또한 조형적 사유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해변에서 주운 돌멩이를 빵이나 감자로 인식하며 사진을 찍고 철거 현장에서 구부러진 철근을 시든 식물처럼 느껴 가져오는 행위 역시 단순한 수집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에 대한 인식의 방향을 전환하는 몸의 실천이다. 그의 회화는 고정된 장면이 라기보다는 정서와 경험이 어우러진 시간의 여백에 더 가깝다.

〈눈이 쌓인 만큼 그리다〉(2025) 연작은 이러한 시간의 밀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1호 붓을 사용해 눈을 심듯 한 획 한 획을 반복하며 화면을 쌓아간다. 흰 물감은 한 번으로는 충분한 질감을 만들지 못하기에 동일한 부위를 수십 차례 덧입히며 밀도와 호흡을 조율한다. 이 반복은 무게 없는 시간을 부드럽게 누적시키는 과정이며 그 흔적은 표면에 미세한 진동처럼 남는다. 여기서의 반복은 단순한 양적 축적이 아니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물을 마주하며 붓을 드는 행위는 숙련의 기록이자 태도의 지속을 실천하는 일이다. 1호 붓처럼 섬세한 도구를 고집하는 태도는 삶의 시간, 신체의 리듬, 감정의 압력이 하나의 물질로 전이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의 물감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감정의 잔류이자 노동의 흔적이다.

〈담쟁이 넝쿨가족~ing – 萬昊倫知〉(2025)는 이러한 인식의 구조를 조형적으로 확장한 작업이다. 벽돌 벽면을 배경으로 실로 꿰맨 선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바늘이 천을 통과하며 남긴 시간의 자국이다. 전면에는 실선의 흐름이, 후면에는 실밥의 질감이 드러나며 화면은 앞뒤를 동시에 보여주는 감각적 구조물이 된다. 제목 속 ‘萬昊倫知’는 작가 가족의 이름을 조합한 것으로, 이 회화는 단일한 이미지가 아니라 얽히고 나뉜 관계를 천 위에 직조하는 작업이다. 이 구성은 니콜라이 하르트만이 말한 감각적, 심리적, 정신적 층위의 통합과도 맞닿는다.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은 예술 작품을 감각적(perceptual), 심리적(psychological), 정신적(spiritual) 층위가 중첩된 복합적 구조로 해석하며, 이 층위들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작품 안에서 통합된다고 보았다. (Esthétique, 1953)
꿰맨 천과 실밥은 물리적 층위, 반복되는 바느질은 정서적 리듬, 가족의 이름은 관계의 서사로 작동하며, 이 세 층위는 하나의 회화적 언어 안에 통합된다. 감상자는 그 복합적 구조를 따라가며, 회화가 품은 감정의 깊이와 시간의 지형을 천천히 더듬게 된다.

멈추지 않는 회화

이만우의 회화는 특정한 형식이나 장르에 수렴하지 않는다. 감정의 여운, 노동의 흔적, 관계의 흐름, 반복되는 시선과 같은 비가시적 요소들이 병치된다. 동시에 화면은 정서적 밀도와 시간적 구조가 교차하는 구성체로 나타난다. 물감은 단순한 색이 아니다. 그것은 손의 압력과 축적된 시간이 응축된 재료로 기능한다. 반복 역시 형상을 완성하기 위한 절차라기보다, 시간의 흐름을 지연시키고 머무르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 회화는 재현의 정확성을 겨루기보다, 작업 이후에도 시야에 남는 이미지의 여운에 집중한다. 이는 회화가 어떻게 시선을 머물게 하고, 감정의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실천적 탐구로 이어진다. 반복, 여백, 밀도의 조절을 통해 시선은 천천히 이동하며, 〈눈이 쌓인 붓질만큼 그리다〉(2025) 연작처럼 가까이에서는 경계가 흐려지고 멀리서야 형상이 드러나는 구조는 감상자의 위치까지 작업 안으로 끌어들인다. ‘보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체험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표현의 도식보다 지속의 조건에 주목하며, 이미지의 구성 이전에 ‘보게 만드는 방식’을 사유하게 한다. 결국 이만우의 회화는 이미지의 구성보다 앞선 ‘보기의 조건’을 사유함으로써, 회화의 감각적-철학적 가능성을 새롭게 구성한다.

홍라담,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Hong Radam, Curator of Daejeon Museum of Art

전시 정보

작가 이만우
장소 CN갤러리
기간 2025-09-17 ~ 2025-09-28
시간 10:00 ~ 18:00
월요일, 공휴일 휴관입니다.
관람료 무료
주최 이만우
주관 충청남도, 충남문화관광재단
후원 충청남도, 충남문화관광재단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문의 02-739-6406
(전시 정보 문의는 해당 연락처로 전화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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