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의 종이는 때로는 잊지 못한 소중한 마음이자 기억이고, 때로는 시간이 남긴 조용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릴 적 나의 집은 벽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메모지들로 덮여 있었고, 그렇게 시간을 기록하던 아버지의 풍경은 불편했지만, 결국 내 작업의 표상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짚듯 아이들과의 질문과 응답 속에서 피어난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메모한다. 그렇게 수집된 파편들 속에는 사소하지만 어릴 적 우리가 품었던 소중한 보석들이 숨어 있다.
그 보석 같은 흔적을 재구성하고 편집해 시간의 흐름을 한 폭의 풍경으로 담아낸다. 벽 위에 구성된 종이들은 단순한 정보 전달 아닌, 감정과 시간의 물성을 지닌 매체이며 파편화된 기억, 쌓이고 접히고 오려지고 포개진 삶의 흔적들이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간의 단면을 시각화하고, 감정의 지층을 드러내는 정원사적 태도를 실현하고자 한다. 그 여정에서 쌓인 시간의 흔적들이, 이번 전시 <흔적의 종이정원>으로 피어났다.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서 출발했지만, 이 정원이 관람자 각자의 감정과 기억을 투영하고 되돌아보는 사유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무심코 지나쳤던 조각들은 영원히 빛나던 보석들이었고, 그것들이 모여 완성된 이 종이정원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기억의 풍경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