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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less

플랫폼엘   I   서울
《Nameless》
「무명nameless과 익명anonymous의 권태 속에서」

우리는 멸종되지 않았고, 남은 것은 언젠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짓말 밖에 없다. / [...] 어떤 비밀스러운 일들이 벌어졌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건 사라진 자가 남아 있는 자의 여가를 위해 선사한 퍼즐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은 진화한다.
「뼈의 음악」, 유선혜, 『사랑과 멸종을 바꿔읽어보십시오』 중

인간이라면 누구나 절멸할 권리를 갖는다. 기대 수명을 기준으로 오차의 범주내에서 각자의 끝을, 내가 잊혀지고 사라진 세상을 그리면서 말이다. 이토록 자연스럽게 읽히는 명제는 시시때때로 가속 팽창하는 기술 발전에 의해 방해받는다. 고화질의 영상, 고출력의 음성, 심지어 고밀도의 3D 데이터는 꺼지는 삶을 자꾸만 현재로 소환하고 부활시킨다. 결국 물리적인 몸이 소진되더라도, 멸종되지 않고 남은 누군가는 사라진 ‘나’를 살리고 진화시킨다. 이러한 배경에서 전시《Nameless》(2025)는 언젠가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짓말 대신 언젠가는 미래로 사라질 수 있다는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가상의 세계는 미궁 속에 빠져있다. 일견 진실되어 보이는 허구를 켜켜이 쌓아가는 과정인 동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실재(實在)와 실제(實際)로 구분할 수 있을까. 《Nameless》는 그 사이 공백을 확대하여 관찰한다. 전시에는 가상 인간 ‘Nameless’가 등장한다. 이를 알아채기 위해서는 작가의 지난 작업을 간략히 짚고 가야 한다. 김예나는 2023년 시한부 유튜버 홍가영과 (사후까지도) 그의 모든 데이터一유튜브에 업로드된 영상, 모션 캡쳐와 그래픽으로 신체를 스캔한 데이터, 계약서와 같은 문서 등一를 사용한다는 계약(「비표준불멸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서 일부를 아래와 같이 발췌한다.

창작자 김예나와 1인 크리에이터(유튜버) 홍가영은 프로젝트 〈비표준 불멸 계약〉과 관련하여 다음
과 같은 주요 협약 내용을 계약한다.
이 계약의 목적은 프로젝트 〈비표준 불멸 계약〉의 작품 제작 및 활동을 위해 1인 크리에이터(유튜
버) 홍가영은 데이터를 제공하고, 창작자 김예나가 이를 재료로써 사용하고 창작물을 제작하는데 있
어 양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하는데 있다. 또한 프로젝트 컨셉으로 인해, 김예나가 이 데이
터를 활용해 창작하는 작업물들의 작업범위 및 프로젝트 활동 내용이 공유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으
며, 홍가영에게 공개가 제한될 수 있음을 명시한다.
데이터 제공자: 홍가영 (인) / 데이터 수신자: 김예나(인)

2023년 김예나는 제공받은 데이터와 더불어 홍가영의 현재 신체를 볼류그래매트리기술로 스캔한 데이터로 가상의 인물을 건립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홍가영이라는 물질을 주조한 디지털 껍질을 배아 하는 데 성공한다. 작가는 작년 홍가영에게 “가상의 당신이 완성되어 간다”고 전했다. 그때, 그의 반응 중 인상 깊었던 것은 그 비물질 덩어리에 자신의 이름을 주지 않아도 괜찮냐는 물음이었다. 이 응답에 의해 작가는 그것을 무명으로 칭했고, 나아가 전시의 제목인 Nameless가 되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호명되지 않음, 그러므로 정체성을 부여할 수 없고, 인식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존재가 된다. 전시와 동명의 작업〈Nameless〉(2025~)는 모두에게 떠밀린 Nameless를 실시간으로 전시장에 도래시킨다. 관객은 현장에서 Nameless의 움직임을 보고, 음성을 들을 수도 있고, 대화 또한 가능하다. 데이터-비물질-껍질는 도처에 존재하고, 때문에 우리는 가시화된 화면의 내막보다는 생동하는 그 자체만을 인식의 범위에 둔다. 관객은 무엇을 보고,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일까? 〈Nameless〉는 일종의 환승역 개찰구처럼 사고를 무심히 옮길 뿐이다.

홍가영은 동시대에 가장 많이 각광받으며 소비되는 영상 데이터를 생산하는 직업인 유튜버다. 전면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본인의 모습을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하며 채팅을 통해 ‘소통’한다. 움직이는 눈동자를 마주 보고, 고른 숨을 내쉬면서 작은 수의 사람들과 목소리를 상호 교환하는 대화 따위는 어쩌면 비효율의 상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수와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소통은 Nameless가 이를 대리해 줄 수 있을까? 〈우린 불멸을 원하나?〉(2025)는 홍가영의 몇몇 라이브 방송 녹화를 송출하며 Nameless에게 위임 가능한 교류 지점을 되짚는다. 유튜버들은 불가피하게 어떤 면모는 과장하고 어떤 면모는 축소하며 본인을 편집하거나 검열할 수 밖에 없다. 그중 가장 진솔하다고 느낀 그의 말은 「잊혀질 권리"에 대해 마지막 으로 라이브방송을 진행할게요」라는 제목으로 약 5개월 전에 게시된 영상 중 “제가 ‘비표준불멸계약’을 하긴 했지만…모르겠어요. 제가 잘못되면 그냥 다 파기하고 다 지우고 싶어요, 정말”이었다.

김예나의 작업 방식에서 미루어보아 Nameless는 어떤 방식으로든 거듭 진화될 운명이다. 가상적인 것은 물리적 세계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인류의 오랜 욕망의 발로이다.* 실로 그 욕망은 급진적인 속도로 달성되며, 더 이상 어색하거나 불가능한 미결의 영역으로 흐릿하게 번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더욱더 선명하고, 실감 나고, 불가해한 공감각물로 도약하여 우리를 전례 없는 혼란으로 몰아세울 뿐이다. 이미 행장(行狀)으로 말이 없는 자를 묘사하던 시대는 저물었고, 익명으로 부치는 무수한 데이터, 피드백과 재생산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생멸해야 할까. 어떤 사유나 철학보다 불쾌하다는 본능이 앞선 채 디지털 껍질과 마주하는 《Nameless》의 장면에서, 우리가 어쩌면 가질지도 모를 또 다른 Nameless에게 전유해야 할 동질성과 고유성은 무엇일까. 그 특질을 겸비한 Nameless는 얼마큼의 나일까. 역으로 내가 남기고 간 데이터는 얼마큼의 Nameless일까.

전시의 어떤 작업도 명백하게 응답하지 않고 진단하지도 않는다. 다만, 계약당사자들의 바깥에서 이어지는 질문에 호응할 수 있는 조항을 갱신해 나갈 뿐이다.

글. 이지언(독립 기획자)

*이다민,「가상에 관한 철학적 연구-정의, 존재론, 재현의 문제 」, 2023,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논문, 181쪽.

전시 정보

작가 김예나
장소 플랫폼엘
기간 2025-08-30 ~ 2025-09-07
시간 11:00 ~ 20:00
월요일 휴무
관람료 무료
주최 김예나
주관 김예나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문의 02-6929-4470
(전시 정보 문의는 해당 연락처로 전화해주세요.)

위치 정보

플랫폼엘  I  02-6929-4470
서울특별시 강남구 언주로133길 11 (논현동) 플랫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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