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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途上)의 추상(抽象)-세속의 길에서 추상하다

서울대학교미술관   I   서울
‘높은 스승(High Master)’에서 온 추상 미학

추상 미학은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해방과 이탈의 시도요, 이를 위해 감각과 경험을 재구성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그 촉수는 정신의 내밀한 곳에서 드넓은 세계까지, 양자에서 우주까지를 광범위하게 아우른다. 개방된 사고와 열린 사회를 향한 염원이 기꺼이 동반된다.

추상 미학의 출처를 관념의 정원으로만 한정시키는 것은 이 시대의 숱한 편견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예컨대 “번뇌와 욕망을 없애고 진정한 마음의 평화에 이른 상태”는 추상의 대지의 한가운데 난 작은 함몰일 뿐이다. 깨달음, 자기성찰, 수신(修身)

추상은 서양의 엘리트 예술가들이 노자 운운하거나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 같은 신비주의 철학을 만지작거리기 이전부터 있었다. 일찍이 신비주의에 경사되었던 추상화가로 스웨덴 국적의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1862-1944)가 대표적이다. 그의 추상 이미지는 칸딘스키나 말레비치보다 한참 앞서 영계의 ‘높은 스승(High Master)’과의 접촉에서 온 것이었다. “나의 회화는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 영적 존재가 나를 통해 말한 내용이다.”라고 클린트는 말한다.

현실계에 갇혀있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영혼을 영계에서 만난 스승이 해방으로 안내했다는 것이다. 칸딘스키가 예술을 “영혼을 깨우는 도구”라 했던 것도 전적으로 이와 다르지 않은 맥락이었다. 초월계의 높은 스승까진 아니더라도 마크 로스코의 추상도 유사한 계보를 공유한다. 로스코가 자신의 추상을 대상이 아니라 경험을 전하는 것이라 했을 때, 그 경험은 다분히 신비주의적인 해방의 출처인 ‘현실의 바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단색 면을 기반으로 하는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1912-2004)의 추상회화는 현실에 조금 더 가깝다. 그의 정신의 스승은 그나마 실존 인물로 중국 초나라의 철학자 노자(老子)였다. 그의 추상화론은 자연 초월을 통해 몸과 마음의 통합을 가르쳤던 노자로부터 온 것이다. 아그네스는 “나의 그림은 고요함과 순수함, 완전한 기쁨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세속의 길에서 추상하다

추상 미학은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해방과 이탈의 시도요, 이를 위해 감각과 경험을 재구성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그 촉수는 정신의 내밀한 곳에서 드넓은 세계까지, 양자에서 우주까지를 광범위하게 아우른다. 개방된 사고와 열린 사회를 향한 염원이 기꺼이 동반된다.추상 미학의 출처가 세계와 동떨어진 고상한 관념의 유희로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보이는 것 너머’는 언제나 ‘보이는 세계’와 밀착해 있다. 편견이나 오류를 제외하면, 정신과 물질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로스코가 추상을 정신적 해방의 경험이라 했을 때, 그 해방에는 이미 ‘해방되지 못한 자아와 세계’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서구의 근현대 추상화론이 대체로 누락해 온 진실이다. 데카르트 철학의 ‘정신과 물질’(mind and matter)의 이원론은 그릇되었다. 거의 모든 형태의 이원론, 생명물과 무생물, 인간과 비인간, 이성과 의지, 그리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그렇다. 실재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그래서 해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생명 없는 세계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개념들을 들어 우리의 경험을 해석하려고 하지 않아야 하고, 또한 어떤 형태의 이원론에도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핵물리학자이자 신학자인 이안 바버(Ian G. Barbour)의 말이다.

사회, 공동체, 몸, 감각이 다양한 심도에서, 그리고 긴밀하게 인간의 무의식, 관념, 초월의 인식의 형성과 전개에 관여한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우리의 인식은 몸을 통해 세계들에 접속되고, 예술은 그 접속을 심화시킨다. 감각이 그렇듯, 해방의 경험도 세속 세계와 결부되어 있다.
지각적 체험과 전적으로 무관한 사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추상은 현실에서 떠나는 그 순간에도, 현실로 되돌아오고 현실에 대해 말한다. 그렇게 파울 클레에게 추상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를 오가는 시소게임이었다. 몬드리안의 추상은 나무의 형태에서 출발해, 그 구조적 본질을 탐색하는 여정이었다.

추상미술은 ‘보이는 것을 부정하는 예술’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갇히지 않으려는 예술’이다. 지속적으로 우리를 옭아매는 세속의 한 가운데서 비롯되는 인식이 추상 미학의 더 절실한 요구가 되는 이유다. 모든 추상미술은 세계와 세계 너머 사이의 공간에서 진리와 선(善)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성취하려는 시도다.

여기서 추상미술의 한 감상법이 도출된다. 추상미술의 언어는 알파벳 형태로만 주어진다. 보이는 것은 인쇄된 글자의 이상한 형태들이다. 마치 신문을 거꾸로 든 것처럼 읽을 수 없다. 읽기 위해서는 신문을 뒤집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글자가 아니라 단어가 나타나고, 제대로 된 의미가 나타난다. 이 뒤집기가 추상의 감상을 추상의 창작만큼이나 흥미로운, 동시에 흥미를 넘어서는 도전으로 만든다. 《도상(途上)의 추상(抽象)-세속의 길에서 추상하다》 전이 그런 경험을 탐사하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장

전시 정보

작가 김서울, 김아라, 박경률, 박미나, 박정혜, 송은주, 심우현, 심혜린, 안종대, 양자주, 이은경, 이창원, 이희준, 조경재, 조재영, 차승언, 최영빈
장소 서울대학교미술관
기간 2025-06-19 ~ 2025-09-14
시간 10:00 ~ 18:00
화-일 10: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주최 서울대학교미술관
주관 서울대학교미술관
출처 사이트 바로가기
문의 02-880-9504
(전시 정보 문의는 해당 연락처로 전화해주세요.)

위치 정보

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151동 서울대학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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