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고치 위의 회화(경계를 넘나드는) Coccon on Painting(Crossing the Boundaries)
갤러리 이즈 I 서울
"누에고치를 회화의 재료로 삼는다." 작은 애벌레는 생존을 위해 고치집을 짓고 그 안에서 인내하며, 변태(變態)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그것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고요한 기다림 속에서도 찬란한 변화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마침내 나비가 되어 날아오를 것이다. "누에고치"는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생명의 흔적이다. 기존의 회화가 평면 위에서 색과 형태를 감각적으로 구현하였다면, 누에고치는 유기적 물질을 통해 존재의 흔적을 드러낸다. 애벌레가 고치를 짓는 과정은 반복적인 행위이며, 이는 회화에서 물감이 중첩되고, 색이 교차하는 과정과 닮아있다. 그러나 누에고치는 단순한 질감이 아니라 시간성, 존재성을 내포한 유기적 구조로서 회화의 물질적 한계를 확장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고치의 형성되는 순간과 회화가 구축되는 과정은 시간의 축적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의 역동성을 담아낸다.
"공간 위에 색을 형성한다." 누에고치를 활용한 작업은 캔버스에서 2cm가량 돌출된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단순한 부조적 표현이 아니라 회화가 지닌 공간성을 깊이를 새롭게 탐색하는 시도이다. 캔버스 위에 수많은 고치를 배치하고, 그 위에 물감이 쌓이면, 시간의 변화에 따라 색채들이 조형적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캔버스가 단순한 시각적 개념이 아닌 촉각적이고, 감각적 공간으로 전환한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이 "그리다."의 개념을 "흩 뿌리다."로 회화릐 개념을 확장했다면, 고치를 이용한 공간성을 통해 "입체적 회화"라는 공간에 위에 색을 형성하는 것이다. 고치의 유기적 표면에 물감이 중첩되면서 형성되는 질감과 깊이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더욱 강조된다. 이 과정에서 회화는 재현을 넘어 시간과 존재를 품은 공간으로 거듭난다.
"존재의 흔적과 공간 형성" 인간은 성장과 변화 속에 존재하지만, 그 과정에서 흔적을 남긴다. 마찬가지로 "누에고치"는 자신의 존재의 흔적으로서 보호의 공간이자 회화적 공간으로 작용한다. 이는 단순한 조형적 형태가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 만든 공간이며, 반복과 변화를 담아내는 공간이 형성된다. 회화에서 고치는 캔버스에 붙어 있지만, 물질과 색채의 층을 형성하며 내면의 공간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인간관계를 조형적으로 은유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모하는 인간의 존재방식처럼 고치는 상처, 보호, 단절과 연결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회화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존재론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단순한 시각적 표현에서 벗어나 공간과 시간 그리고 관계성을 창조하는 예술로 나아간다.
"누에고치는 캔버스에서 빛을 머금는다." 기존의 회화가 색과 형태를 통해 자연, 인간을 관찰하고 묘사했다면, 누에고치의 유기적 특성을 통해 변화하는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반복적으로 쌓인 물감과 고치의 결합은 빛의 투과성으로 인해 생명의 흔적을 드러낸다. 누에고치는 단순한 형상이 아니다. 이는 생명과 소멸, 존재와 부재 그리고 애벌레가 생존했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다. 나비가 되어 날아간 후에도 남는 흔적들은 회화적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여,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회화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무형의 실을 뽑아내다." 예술은 단순한 창작을 넘어 생명의 변화의 존재의 흔적을 담아내는 창조적 과정이다. 누에고치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타자의 공간, 자아의 공간, 허무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변화의 과정 속에서 고치를 벗고, 새로운 형태가 드러나듯 회화는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의 작업은 "무형의 실"을 뽑아 그 형태를 구축하고, 형상화하는 작업을 통해 회화가 단순한 평면을 넘어 존재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담아낸 수 있음을 탐구한다. "누에고치"를 활용한 회화는 단순한 형식을 넘어 삶과 예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단순한 시각적 오브제가 아니라 존재와 관계의 매개체로 작용하여 창조적 "무형의 실"을 뽑아 그 형태를 구축하고, 형성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