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 자유의지로써 자신의 자유의지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인간이 보여 주는 역설 중의 역설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 지금의 현대사회는 유래 없는 자유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범위는 크게 확장되어있다. 그러나 그러한 법적 · 제도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는 병영, 병원, 공장, 학교 등의 소단위 권력체제를 통하여 규율을 확산시키고 거기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개개인을 통제하고자 한다. 미셸 푸코는 이에 대하여 “규율은 개인을 제조한다.”고 말했다. 과거 권력이 가시적인 폭력을 사용하여 개인들을 통제하였다면, 현대에 와서는 규율 중심적인 시스템을 가동하여 ‘규범’이라는 척도를 통해 ‘정상적인 인간’이라는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마치 관습 또는 보편적인 사회의 가치로 쉽게 위장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검열하게 하며, 상상력을 제한하도록 기능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개인들에게는 이 ‘보편적’이라고 불리는 규율이 내재화 되며, 이는 흔히 직업을 선택하거나 진학을 하는 시점에서 선택의 혼란을 일으키곤 한다. 이러한 문제는 베이비 붐 세대 이후 본인 또래 혹은 지금의 30대 청년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극도의 경쟁 사회에 내몰린 청년들은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욕망 하는지,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조차 파악하기 전에 기득권 세대가 구축해 놓은 견고한 구조 속에서 권장된 목표를 향해 쉴 틈 없이 달려가게 되어있다. 본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작업을 통해 거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담론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이는 본인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던지는 자기 성찰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본인은 앞서 언급한 문제의식과 시대정신을 주로 ‘새(鳥)’의 형상을 통하여 드러낸다.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새를 불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냄으로서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나타내고 있다. 본 전시는 본인이 위와 같은 주제의식을 가지고 지난 오 년 간 행해왔던 조형연구에 대한 하나의 탐험(Expediton)의 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느낀 사회 현상과 거기서부터 시작된 자유에 대한 문제의식, 시대정신에 대한 고민을 근간으로 조형연구의 탐험은 ‘새 머리를 한 인간’으로 출발하여 최근에는 스스로 날기를 포기하여 멸종의 비극을 맞이한 ‘도도새’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본인은 이러한 부조리를 극복해 나가는 방법으로서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적인 사고방식을 제안한다. 권장되는 적절한 목표와 모범 답안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방황이라는 행위는 부덕하게 여겨지곤 하지만, 오히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수많은 길들 위에서 떠돌 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길들과 가능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때문에 본인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날 수 없는 새들은 ‘날지 못하는 바보 새’ ​라기 보다,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존재들 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세상은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려 하고, 수많은 거짓들을 사실인 양 속이지만, 그런 폭력적인 서사 속에서도 여전히 꿈틀거리는 희망적인 무언가를 계속해서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을 지나치지 않는 것, 반짝이도록 다듬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가 가져야 하는 시대정신일 것이라고 믿는다. 때문에 예술가는 창작자인 동시에 탐험가이다. 남들이 좀처럼 가지 않는 길을 찾는 일은 안온하기보다는 고단한 순간이 대부분이지만, 세계는 지도의 빈 부분을 채워나갔던 용기 있는 이들의 역사로 이루어졌듯이 거기에는 그 고단한 만큼의 무언가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