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은 전시장 전체를 풀이자 털 같기도 핀(pin)같기도 한 이미지로 채워 관람객에게 촉각적인 감각 돋는 공간, 감각하는 존재적 시간을 제안한다. 그녀가 푸른 잔디를 상상하며 초록, 회색, 붉은 펜으로 끄적인 30×30cm의 작은 종이드로잉과 판화작업은 수 천 장이 되었다. 서울의 비좁아 답답하고 외로운 자취방의 작은 창문을 통해 상상하는 푸른 잔디는 작가에게 그리운 고향집, 대자연을 생각나게 하는 달콤한 위안이었다. 한 장 한 장 반복과 섬세함에 담겨진 작가의 기억과 정서는 전시장 전체를 통해 관람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각박하고 불안정한 현대사회에서 작가가 바라는 이상향이자 유토피아의 구현임과 동시에 회색도시, 붉은 상처로 대변되는 자극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동시대적 상실을 향유,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