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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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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집 꾸미는 일을 오랫동안 하다보니까 저희 집에서 제일 자주 바뀌는 건 가구도 커튼도 아니고 벽이 됐어요. 오픈갤러리 그림구독을 시작한 지 벌써 몇 년째인데, 이제는 그림 없던 시절의 벽이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예요.
세상에 딱 한 점뿐인 원화를 잠옷 바람으로 식탁에 앉아 매일 감상한다는 것. 몇 년을 누려도 이 호사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벽도 옷을 갈아입는 게 저희 집 연례행사가 됐는데,
이번에는 여름을 앞두고 싱그러운 초록 작품으로 교체했어요.
이번에 온 작품은 박소연 작가님의 '잔디밭'이라는 60호 원화예요. 캔버스에 유채와 혼합 재료를 써서
잔디를 실물처럼 세워 올린 작품인데, 서너 걸음 떨어져서 보면 초록 들판을 가로지르는 보도블록 길이고 코앞까지 다가가면 장르가 바뀝니다.잔디가 붓 자국이 아니라 진짜 풀숲처럼 일어나 있고, 작은 나무 말뚝 사이로 흰 줄이 느슨하게 걸려 있어요.
저희 아이는 요즘 잔디밭 그림 앞에서 자기 나름의 수사를 펼치는 중인데 틀린 답이 없으니 매일 결론이 달라집니다. 화면 속 영상은 눈을 붙잡아 두지만 벽 위의 그림은 눈을 풀어놓아요. 아이 방까지 스며드는 미디어 홍수 속에서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어린 시절 집에서 배어든 취향은 지워지지 않는 밑그림처럼 남는다고 하죠. 그 밑그림을 지금 그려주는 중이라고생각하면 구독료가 아깝지 않아요.

후기 속 작품

A1707-0002
작가 박소연

잔디밭

캔버스에 유채, 혼합 재료

130x97cm (6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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