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량 작가는 전통 민화의 상징과 형식을 빌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감정과 기억, 관계를 새롭게 엮어 나가고 있다. 단순히 옛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오늘의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 새로운 민화를 만들어가며 그 중심엔 ‘올랑이’라는 존재가 있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서 태어난 이 작은 캐릭터는, 어느 순간 감정을 품고 나 자신을 비추는 또 하나의 자아로 확장된다. 이 외에도 <파경>에선 관계의 균열을, <나의 연대기>에선 개인의 기억과 시간을, <부활>에선 성장과 회복의 순간을, 그리고 <감모여재도, 나 가거든>에서는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의 다정한 기억을 이야기한다. 이 모든 작업은 쉽게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을 그림이라는 장면 속에 조용히 머무르게 하여 보는 이의 감정을 환기하게 한다.
박기량 작가의 작품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은유적인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조용히 감정을 머물게 합니다. 익숙한 민화의 형식을 따르되, 그 안에 담긴 정서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더 진하게 다가옵니다. 그렇기에 보는 이는 작품을 마주하며 각자의 감정을 투영하고, 때로는 자신도 몰랐던 마음의 결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히 한 장면 안에서 과거와 현재, 개인과 보편의 시간이 겹쳐지는 방식은 감상의 여운을 길게 남깁니다. 일상에 스며든 작가의 작품을 곁에 두고 오래 바라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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