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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비 작가의 작업은 하나의 감정 기록이자, 감각적 일기에 가깝다. 작가는 내면의 불안과 고요를 흑연으로 반복하며 눌러 쓴다. 이 과정은 작가 자신의 감정을 응시할 수 있는 구조를 축적해 나가는 행위이자, 내면을 다듬고 밀도 있게 되새기는 과정이다. 흑연은 그 축척의 기록이며 반복은 작가에게 감정의 가장자리까지 천천히 닿게 해주는 실마리이다. 이때 탄생한 회화 속 생명체들은 이름도 정체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표정을 지닌 채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작가는 이 존재들을 '괴물'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괴물들은 위협적이지 않고, 인간의 감정을 대신 짊어진 걱정 인형의 형상에 가깝다. 이 생명체들은 때로 식물 속에 숨거나, 구름 속을 부유하거나, 어느 정적인 풍경 속에 조용히 숨어 있다. 구체적인 표정을 짓지 않고, 시선을 가진 존재로서 관람자와 대화를 시도한다. 회화뿐 아니라 조각, 섬유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된 작업은 일상에 스며든 불안의 감각을 다정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며 시각화하는 과정을 가진다. 단순한 괴물의 형상은 결국 삶의 반복과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풍경이다.
글로 남긴 일기는 누구나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림으로 남긴 일기는 작가만이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회화를 자신만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관람자에게 전달하는 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의 형성을 바탕으로 피오비 작가의 작업이 시작되었으며, 말로 쓸 수 없는 마음을 매일같이 조금씩 남기는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태어난 괴물들은 작가의 작은 걱정들이 형체를 얻은 모습입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눈을 피하지도, 거칠게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식물 사이, 하늘 위, 구름 아래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갑니다. 작가의 작업은 관람자에게 감정과 느낀 점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만의 기억과 해석을 그려 넣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줍니다. 우리가 그의 작품을 오래 응시하게 되는 이유는, 작가가 만든 여백 속에서 결국 얻어가는 경험과 공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은 말보다 늦게 다가오지만, 감정이 쌓여가듯 끊임없이 다가오며 일상 속에서 행운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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