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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리의 작업은 회화라기보다 사건에 가깝다. 그 사건은 물감과 종이, 시간과 공간, 무엇보다도 몸이 동원된 하나의 감각적 충돌이자 행위의 증거로 남는다. 붓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의 손끝, 피부, 혹은 몸 자체가 화면과 직접 접촉하며 그림을 완성한다. 이 신체적 밀착은 매개를 허용하지 않는 예술적 태도이자,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감각을 가장 본능적인 방식으로 시각화하려는 시도다. 이안 리의 화면은 극심한 통증이나 공포, 체온과 호흡이 농축된 장면의 결과물이며, 그로 인해 추상적이지만 명료한 긴장감을 드러낸다. 반복과 충돌, 추락과 치솟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회화 안에는 살아 있는 생명, 뼈마디의 움직임, 관절의 흔들림이 그려져 있다. 고통은 정제되지 않고 날 것으로 남겨지며, 그것이 오히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안 리의 행위는 신체의 동작을 반복하는 제스처가 아니라, 생명의 파동을 화면 위로 불러오는 구상과 추상사이에, 물감의 질료와 행위 사이에 피어난 독특한 자취로 자욱하다. 어쩌면 작가에게 그림은 ‘그리기’의 과정보다는 ‘남기기’의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삶에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보다, 잊고 싶은 통증이 더 오래 남는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안 리 작가의 작업은 고통의 기억을 숨기지 않고, 찰나의 통증마저도 있는 그대로 화면에 옮깁니다. 몸을 도구로 삼아 직접 그려낸 장면들과 어디에도 필터 없이 남겨진 흔적은 생생하고도 처절한 감정의 결을 보여줍니다. 화면 속 작가의 표현은 절제되어 있고, 때로는 비어 있으며, 다른 순간엔 격렬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생명의 결이 살아 있습니다. 작가가 심장을 움켜쥐던 순간, 온몸을 긴장시키며 살아내던 시간들이 그려진 이 작업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 안의 생존 본능과 마주하게 만듭니다. 그림을 보고 있다 보면, 가만히 떠오르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건 누군가의 기록이다’라는 감정. 마치 한 사람이 삶을 버티며 남긴 생의 흔적을 마주하는 듯한 진정성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생명의 언어로서 우리를 위로해줍니다. .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싶은 날, 혹은 나조차 나를 잘 모르겠는 날. 그 그림 앞에 서서 무언가를 느낀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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