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한정 / 13주년 특가 ] 3개월 체험 총 4.9만원

의동

Euidong

수원대, 서양화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 학사

5점의 작품
5점의 작품
개인전
2026 착각의 경건 (도봉문화재단 함석헌 기념관)
2023 경이로운 순례자 (서우갤러리)
단체전
2025 강북페스타 (강북문화재단 진달래홀)
2024 대형 파사드 전시 (한신대학교 캠퍼스)
강북페스타 (강북문화재단 진달래홀)
2023 평화를 준수하라 (전태일기념관)
2021 아트락페스티벌 (고양 스타필드)
아트락페스티벌 inside (고양 스타필드)
작품소장
2020 꽃말:림 (훈훈한 마취 통증의학과)
수상/선정
2025 안견미술대전 입선 (서산문화재단)
강북 festa (강북문화재단)
2024 <정화> 대형 파사드 전시 (한신대학교 캠퍼스)
여성독립운동가 공모전 장려상 (자생의료재단, 국가보훈처)
강북festa (강북문화재단)

작가의 말

원맥- 눈 감을수록

자연에서 마주한 경이로움에서 출발해,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에서 존재들을 이어주는 흐름을 탐구합니다.

숲과 물, 빛과 밤하늘에서 시작된 관심은 점차 생명을 이루는 미세한 구조와 물질, 보이지 않는 파동과 우주의 질서로 확장되었습니다. 작가는 거대한 풍경과 미세한 생명의 구조가 서로 다른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연속선 위에 있다고 바라봅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존재들을 관통하며 이어지는 근원적인 흐름을 ‘원맥(原脈)’이라 부릅니다. 원맥은 눈에 보이는 하나의 선이나 물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균사가 땅속에서 생명을 연결하고, 혈관과 신경이 몸을 연결하며, 물과 빛과 에너지가 끊임없이 이동하듯, 개별적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사실은 하나의 세계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한 개념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작업의 재료에도 이어집니다. 이끼와 시든 꽃잎, 실리콘과 빛은 단순한 표현 재료가 아니라 생성되고 연결되고 변화하며 소멸하는 존재의 흔적이 됩니다.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선은 균사와 신경망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거대한 우주의 구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미시와 거시는 그렇게 하나의 화면 안에서 서로를 닮아갑니다.

최근 작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태도는 ‘눈을 감는 것’입니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세계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판단과 감정에서 잠시 벗어나 보이지 않던 것을 감각하기 위한 작은 암전입니다.
그것은 휴식이 될 수도 있고, 기도와 염원이 될 수도 있으며, 세계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침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작가는 묻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은 무엇으로 이어져 있는가.
작업은 자연을 재현하거나 관계 자체를 설명하는 데 머무르지 않습니다. 자연의 풍경에서 생명의 미세한 구조로, 물질에서 파동으로, 다시 우주적인 풍경으로 이동하며 결국 하나의 질문을 향합니다.
사랑은 어떻게 하나의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가.
그에게 사랑은 감상적인 정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가 관계를 맺고, 생명을 지속하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게 하는 근원적인 힘에 가깝습니다.

<원맥>은 그 보이지 않는 연결을 감각하기 위해 작가가 만든 이름입니다. 작업은 그것을 설명하거나 증명하려 하기보다, 풍경과 물질, 빛과 침묵을 통해 관람자가 잠시 경험하게 하는 시도입니다.

Q.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살아가면서 말이나 생각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을 자주 경험했고, 그것을 붙잡아두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작업을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은 제 작업의 중요한 출발점이었습니다. 숲이나 물, 밤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아름답다는 감정을 넘어,
‘이 수많은 존재들은 어떻게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 풍경을 그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풍경 자체보다 그 풍경을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와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관심은 생명의 미세한 구조와 물질, 파동과 우주로 계속 확장되었습니다. 지금은 서로 분리되어 보이는 존재들 사이에도 어떤 근원적인 연결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작업 안에서 ‘원맥’이라는 언어로 탐구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기보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계속 작업하다 보니 작가라는 삶을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 작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우리는 서로 완전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연의 경이로운 풍경에서 그 감각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관심은 생명을 이루는 작은 물질과 구조로 향했고, 다시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과 거대한 우주의 질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아주 작은 세계에서 아주 큰 세계까지 바라보다 보니, 서로 전혀 달라 보이는 존재들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보이지 않는 연결의 근원적인 흐름을 ‘원맥’이라고 부릅니다.
이끼와 시든 꽃,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선과 빛 역시 그 흐름을 감각하기 위한 작업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그 탐구의 끝에서 제가 계속 마주하게 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단순히 사람 사이의 감정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존재가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생명을 지속하고 하나의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힘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제 작품이 어떤 정답을 설명하기보다는, 관람자가 잠시 멈추어 자신과 타인, 자연과 세계를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눈을 감는 순간 오히려 보이지 않던 것이 느껴지듯,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세계는 수많은 연결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제가 작품을 통해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Q. 주로 사용하시는 표현 방법과 스타일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특정한 표현 방식이나 하나의 재료에 머무르기보다, 작업에서 말하고자 하는 세계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편입니다.
유화와 아크릴을 비롯한 한국화물감, 분채, 먹, 그리고 실리콘, 이끼, 시든 꽃잎, 빛 등 서로 성질이 다른 재료를 함께 사용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자연의 풍경을, 때로는 미세한 생명이나 파동, 우주의 구조를 연상시키는 추상적인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실리콘은 제 작업에서 중요한 재료입니다. 실리콘을 가늘게 늘이고 겹쳐 만들어지는 수많은 선은 균사나 혈관, 신경망처럼 보이기도 하고 멀리서 보면 거대한 우주의 구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나의 형태가 바라보는 거리와 관점에 따라 미시적인 생명과 거시적인 세계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낍니다.

이끼와 시든 꽃잎 역시 단순히 자연을 재현하기 위한 장식적 재료가 아닙니다. 살아 있거나 한때 살아 있었던 물질이 작품 안으로 들어오면서 시간과 생성, 변화와 소멸의 흔적을 직접 갖게 됩니다. 저는 이미지를 그리는 것만큼이나 물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시간과 흔적을 작품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작업에는 구상적인 풍경과 추상적인 화면, 평면과 입체적인 물성이 함께 존재합니다. 서로 다른 방식처럼 보이지만 제가 바라보는 대상은 같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형태보다 그 안과 사이에서 무엇이 흐르고, 무엇이 서로를 이어주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결국 표현 방법은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제가 ‘원맥’이라고 부르는 보이지 않는 연결을 어떻게 감각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계속되는 실험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가장 애착이 가거나 특별한 작품이 있으신가요?
가장 특별하게 생각하는 작품 중 하나는,<순례>입니다.

밤의 숲과 물, 수많은 작은 빛과 밤하늘을 담은 100호 작품입니다.
당시에는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그 안에서 반딧불이가 주변을 비추는 소명을 마치고 나면 별이되어 은하수의 일부분이되는 광경을 삶에 빗대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바라보니 지금 제가 작업하고 있는 세계의 시작점들이 이미 그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화면 가까이에 존재하는 작은 빛에서부터 나무와 숲, 물, 그리고 멀리 밤하늘과 우주까지 시선이 확장됩니다.
당시에는 의식적으로 ‘미시와 거시의 연결’이나 ‘원맥’이라는 개념을 정립하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아주 작은 생명의 움직임에서 거대한 세계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이미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례》는 완성된 과거의 작품이라기보다 제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계속 확인하게 해주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지금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재현하는 데서 더 나아가 물질과 파동, 생명의 구조와 보이지 않는 관계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원맥’이라는 언어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례》를 바라보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던 지금의 작업이 이미 그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Q.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가장 많은 영감을 얻는 곳은 자연입니다. 숲을 걷거나 물을 바라보고, 밤하늘이나 빛이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순간을 오래 바라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자연 앞에서는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세계가 갑자기 낯설고 경이롭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제 작업은 대부분 그런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데서 그치지는 않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다가 뿌리와 균사로 관심이 이동하고, 그것이 다시 세포와 신경망, 파동과 에너지, 우주의 구조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학에서 발견되는 이미지와 개념들도 작업에 중요한 자극이 됩니다. 현미경으로 본 생명의 구조와 망원경으로 바라본 우주의 모습이 때때로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에도 매력을 느낍니다.

그리고 의외로 사람들의 아주 평범한 모습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누군가 잠시 눈을 감고 있는 모습, 기도하거나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 지친 사람이 가만히 쉬고 있는 순간처럼 특별할 것 없는 행동이 어느 순간 굉장히 깊게 다가옵니다. 최근의 ‘눈 감을수록’이라는 작업도 그런 일상적인 행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제게 영감은 특별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지나치던 것에서 보이지 않던 연결을 발견하는 순간에 오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 인간, 미세한 생명과 거대한 우주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같은 질서를 서로 다른 크기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작업을 시작하고 싶어집니다.

Q. 앞으로 작업 방향은 어떻게 되시나요?
지금까지의 작업을 돌아보면 하나의 대상을 계속 그렸다기보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크기가 끊임없이 이동해왔던 것 같습니다.

세포나 균사처럼 아주 작은 생명의 구조에서 출발해 자연의 풍경과 우주적인 공간으로 확장되기도 하고,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와 눈을 감거나 기도하고, 기다리고, 사유하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과 영성에 대한 관심은 다시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세계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제 작업은 미시에서 거시로, 거시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영성으로, 그리고 다시 미시로 돌아오는 하나의 순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그 각각의 순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붙잡는 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를 더 작업해보고 싶습니다.
미시적인 생명의 구조가 어떻게 거대한 풍경으로 이어지는지, 자연의 경이로움이 어떻게 인간의 감각과 내면으로 들어오는지, 그리고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다시 세계와 연결되는 순간은 무엇인지 탐구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각각 떨어져 있던 작품들 사이에 하나의 서사가 흐르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눈을 감는 것’도 그 연결을 위한 중요한 방법입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세계는 잠시 사라지지만, 오히려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감각과 기억, 관계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눈 감을수록’은 하나의 소재라기보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를 오가는 통로로 계속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동시에 저는 눈을 감은 세계만을 그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이 세계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일 역시 제게는 여전히 중요하고 흥미로운 작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특정한 장르나 형식에 스스로를 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극사실적인 표현이 필요한 순간에는 그렇게 작업하고, 추상이 더 적합하다면 추상으로, 물질이나 빛, 공간 또는 개념이 필요하다면 그것들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스타일의 일관성보다 제가 구축하고 있는 서사의 일관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규모 역시 더욱 확장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관람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들어와 있다고 느낄 정도의 대형 작업과 공간 작업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가 ‘원맥’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작품에 모든 것을 설명하기보다, 미시와 거시, 자연과 인간, 물질과 영성처럼 서로 다른 지점에서 원맥을 각각 탐구한 작품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독립된 작품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이 한 공간에 모였을 때 비로소 하나의 거대한 연결과 풍경을 이루는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결국 앞으로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은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대상과 대상 사이, 작품과 작품 사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이어주는 세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연결들이 충분히 쌓였을 때, 제가 오래 생각해온 질문—사랑은 어떻게 서로 다른 존재들을 연결하고 하나의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가—에 작품 자체가 조금씩 대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Q. 대중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사람은 모두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각자의 경험도 생각도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런데 문득 침묵하고 있는 사람이나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면, 그런 차이들이 잠시 희미해지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침묵과 눈을 감는 행위는 서로 닮아 있습니다.
말하지 않는 순간에는 목소리의 차이가 사라지고, 눈을 감는 순간에는 외형과 서로를 구분하던 시선이 잠시 멈춥니다.그래서 저는 눈을 감는 것이 우리를 각자의 내면으로 고립시키는 행위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닮은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행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장에서도 사람들은 결국 각자의 몸으로 작품 앞에 섭니다.
한 사람은 작품 앞에서 위로를 느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은 자연이나 어떤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잠시 머물다 갈 수도 있습니다. 모두 서로 다른 경험을 하지만, 같은 작품 앞에서 각자의 침묵을 가지고 머무르는 그 순간만큼은 홀로 있으면서도 함께 있는 상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도 어쩌면 그런 순간입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는 말과 외형의 차이를 넘어서는 어떤 공통의 감각과 영성이 존재하고, 그것은 우리가 서로 다른 존재이면서도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결국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하나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단순히 생명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다른 존재를 사랑할 수 있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훗날 제 작업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창한 설명보다 이런 정도였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를 그린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차이 아래에서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을 끝까지 바라보려 했구나. 그리고 그곳에서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려 했구나.’

그렇게 기억되는 작가라면 좋겠습니다.

<눈을 뜨면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본다.눈을 감으면 각자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가장 개인적인 행위가 역설적으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하나의 모습이 된다.>

즉 ‘눈 감을수록’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작업인 동시에, 개별성 아래 존재하는 보편성을 찾아가는 작업을 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Q. 작품 활동 외에 취미 활동이 있으신가요?
연기와 명상, 기도, 그리고 조깅, 땀을 흘리는 움직임을 좋아합니다.
또 매일 성경말씀을 서예와 캘리그라피를 쓰고 나무를 깍아 십자가를 만드는 시간도 일상의 중요한 루틴입니다.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좋아하지만, 몸과 손을 움직이며 생각을 비우는 시간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특히 연기는 오랫동안 해온 활동이라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림이 물질과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라면, 연기는 몸과 목소리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경험해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상과 기도,서예,조깅 역시 서로 다른 활동처럼 보이지만 제게는 잠시 속도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시간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시 작업으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Q. 작품 활동 외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앞으로는 회화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과 만나는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연기를 해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회화와 연기, 전시와 퍼포먼스를 하나의 작업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습니다. 전시장 안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과 공연을 관람하는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관람자가 단순히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공간과 이야기를 함께 경험하는 사람이 되는 작업을 꿈꾸고 있습니다.
특히 언젠가는 1인극과 전시가 결합된 형태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림 속에서 탐구해 온 질문들을 몸과 목소리로도 이어가며, 하나의 전시가 하나의 공연이 되고, 하나의 공연이 다시 하나의 전시가 되는 경험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가 작업을 통해 이야기해 온 생명, 연결, 원맥,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도 회화라는 하나의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제 개인적인 목표는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사람들과 조금 더 깊게 만나고 함께 사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삶이 노을질 때 알수 있겠지만, 현재는 제 작품과 연기로

“하나의 전시가 하나의 공연이 되고, 하나의 공연이 다시 하나의 전시가 되는 경험.”

그것이 목표이지 않을까? 추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