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보건학 석사
독일의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저는 벌써부터 예술가입니다. 다만 세상을 향해 그 예술을 어떻게 표출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을 뿐입니다.
그동안 저의 삶은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흔이 넘어 신춘문예를 통해 동화작가로 데뷔했고 수십 권의 책을 썼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부처와 국공사립 도서관에서 제가 쓴 책들이 읽을 만하다고 추천도 많이 해 주시고, 대한민국 대표 그림책으로 해외 북페어어 나가기도 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원로 작가님께 칭찬도 듬뿍 받았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 때문에 고통스러웠습니다. 그것은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가 어린시절 침대에서 어머니의 굿나잇 키스를 기다리며 울음을 터뜨리던 그 순간(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중에서)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그 울음은 갈망과 트라우마라기 보다는 오히려 엄마의 품에서 잠드는 마르셀의 안도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림은 저에게 존재와 인식, 세상의 본질과 현상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유실된 시간에 대한 보상이며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겸손이자 지금, 여기에서의 유포리아입니다.
예술 DNA가 있다해도 고운 색으로 염색하고 초정밀 광학기기로 살핀다 한들 그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그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투명망토를 입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요. 우리는 그것을 예술로만 증명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표출하는 예술을 새로운 눈으로, 숨결로 느낄 때 전율이 밀려옵니다. 또한 저에게도 표현하는 DNA가 있다는 게 소중하고, 분에 넘치는 그 소양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마르셀 푸르스트의 말로 제 소개의 변을 마치려고 합니다.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감상자 분들이 제 그림을 볼 때 투명망토 입은 제 DNA와 여러분의 시냅스가 반짝하고 반응하기를 고대합니다. 만약 우주의 에너지가 스파크를 일으키는 일이 있다면 바로 그 때가 아닐런지요.
Q.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에게 그림은 숨을 쉬는 것과 같았습니다. 공기처럼 자연스러웠고 그래서 딱히 그림을 직업적으로 삼아야겠다고 여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림을 업으로 삼은 사람처럼 말이죠.
그리지 않겠노라 결심한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한번 붓을 잡으면 밤을 새우게 되어 건강을 해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또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규교육으로 미술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그림에 대한 갈망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렸습니다. 예술의 전당 프로그램과 소마미술관 프로그램을 통해 드로잉과 회화 기초를 배웠습니다. 한국 전통문화에 관한 책을 집필하면서 한국 전통화에 끌려 한국 전통화의 거장, 송규태 선생님을 사사하고, 오디예술센터 인터내셔널 큐레이터 박연옥 선생님을 십여 년 동안 사사했습니다. 또 회화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참가한 대한민국소치미술대전에서 수상하면서 그림을 더욱 많이 그리게 되었습니다.
감상자와 작가를 연결해 주는 이런 포털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아무리 초연결 시대라지만 작가가 감상자를 만나는 건 그동안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JD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말을 통해 진심으로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나면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도 홀든 같은 감상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Q.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찰나에 떠오른 순수한 물적 감성, 해석되지 않은 경험적 데이터, 거꾸로 보기, 뒤집어 보기, 인간 중심주의에서 탈주하기, 여러 가지의 추론, 우연적 마주침, 오래된 것만큼 새로운 것들, 뇌의 화학적 전기적 작용, 몰입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을 탐구하는 여정이며 자유로움을 향유하는 특권이라 여깁니다. 이런 자유로운 여정을 감상자와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주로 사용하시는 표현 방법과 스타일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창호에 어리는 투명도, 나뭇잎의 반짝임, 꽃잎의 흔들림, 바람의 기호, 해류, 기하학적 이미지, 숨은 의도, 헐떡이는 진심, 갈등의 눈, 온갖 기호, 효율(per second), 지루함의 척도(boring-o-meter), 한밤중의 명료함 등을 좋아하고 표현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오묘하며 오래 보아도 좋습니다. 이들을 두껍지 않게 표현하는 게 좋습니다.
부러 업사이클링을 하는 건 아니지만 새것인데 버려지는 천들을 바느질로 잇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재료가 되고, 새로운 세상이 되고, 그것을 캔버스 삼아 그림 그리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쓰레기를 줄이는 것도 행복에 기여하는 부분입니다.
Q. 가장 애착이 가거나 특별한 작품이 있으신가요?
가장 소박한 천인 면(광목)에 자연백색 호분으로 그린 20호 달항아리 그림을 좋아합니다. 자연백색은 면천의 색과 거의 유사하여 정면에서 보면 그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움직이면서 보면 그 윤곽과 색이 선명히 드러나는데 빛에 따른 그 변화가 마치 홀로그램 놀이를 하는 것처럼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저는 이 그림의 부제를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그림'이라 붙이려고 합니다. 착하다는 가치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인성이어서 설령 정면에서 그림이 잘 안 보이더라도 작가에게 불평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인다고 스스로 믿을 테니까요.
Q.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과학책을 볼 때, 신문의 사회면을 볼 때, 논리적 추론을 할 때, 수학문제를 풀 때, 마이크로와 매크로의 세계를 관찰할 때, 자연의 숭고미를 마주할 때 그림세포가 펄떡입니다.
Q. 앞으로 작업 방향은 어떻게 되시나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그리는 것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또 여러 사람이 한 작품을 함께 만드는 공동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아이들과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예술은 보기만 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예술 가소성(plasticity)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Q. 대중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새롭고 유연하며 담백하고 담대하며 또한 통찰적이어서 꿰뚫어보고 절제의 미가 있다고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개별적이고 독특하지만 인류 보편의 비늘을 건드리는 작가이길 바랍니다.
때로는 담담하지만 때로는 강렬하여 붉은 정열을 느껴주기를 바라고, 때로는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으로 냉철하게 표현하지만 그 안에 따뜻함을 배채했다고 읽히기를 바랍니다.
Q. 작품 활동 외에 취미 활동이 있으신가요?
수영을 즐깁니다. 물 속에서 태생 이전의 유영을 경험하는 듯한 움직임을 좋아합니다. 수영할 때면 물의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 싶어집니다.
댄스를 즐깁니다. 사람을 분류하라는 임무가 주어진다면 저의 분류는 추는 자와 추지 않는 자입니다. 춤은 태초의 움직임이며 모든 생물이 즐기는 행위입니다. 춤은 생명의 멋진 증거입니다.
요리를 즐깁니다. 한때 요리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재료를 새롭게 조합하여 새로운 요리가 탄생하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맛은 기본입니다.
종이 신문 보기를 좋아합니다. 가장 역동적인 드라마가 신문에 있습니다. 특히 종이 신문에서 볼 수 있는 우연성은 마치 개가식 도서관의 그것과 같아서 행운이 덤입니다. 또한 방송에 비해 의도적, 선택적, 주도적이기에 더 좋습니다.
바느질을 좋아합니다. 천을 한 땀씩 이어 붙이는 것은 등산의 한 발자국 또는 독서의 한 줄과 같습니다. 그걸 축적하 이루어낸 결과물은 경이롭습니다. 그 경이는 잭팟이 터질 때의 쾌감과 비교할 수 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잭팟은 도파민 스피아크와 같은 것이어서 후유증이 있지만 바느질은 서서히 도파민을 올리기에 바람직한 신경전달물질 분비기전을 도모하게 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와 비슷한 프로토콜입니다.
시를 즐겨 씁니다. 언어의 낯선 조합을 좋아합니다. 현상을 본질적 언어로 변환하기, 이성적 사고를 감각적으로 뱉기, 예민한 촉수를 벼르고 별러 지금껏 아무도 못 본 바람 한 줄기 움켜쥐기, 이해와 오해의 스펙트럼을 훑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이런 것들이 시를 쓰는 이유입니다.
Q. 작품 활동 외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초극저체중이어서 근육을 통한 체중증량이 목표입니다. 근육운동을 싫어하는데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