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학교 동양화 석사
스쳐 지나간 것에도 뒷모습이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잔상이 된다. 지나간 시선과 장면들은 이미지로 남고, 그것들은 다시 인연이 되어 돌아온다. 내 작업은 그동안 스쳐 지나가며 본 시선들을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우연히 어떤 장면을 마주할 때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을 느끼곤 한다. 프랑스 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사람들이 사진을 보는 방식의 한 종류로 설명한 “푼크툼(punctum)”처럼 또렷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마치 한때 그 안에 있었던 것 같은 감각처럼 내 작업은 흐릿하고 오래된 흑백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여러 겹의 연필 선을 쌓으며 윤곽이나 세부 묘사는 생략한다.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장면은 원래부터 흐릿했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감정이 머물기 시작한다. 나의 시선을 통해 나의 회상, 그리고 보는 이들도 각자만의 해석을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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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순간들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머물게 된다. 그렇게 쌓인 장면들은 나의 작업 안에서 희미해지기도 하고 오래 남기도 하며 잘 보관되기도 한다.
나의 작업은 언제 썼는지도 모르는 일기장 속 장면들을 꺼내볼 수 있는 기록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 기록을 통해 우리는 문득 남아 있던 감각을 떠올리고, 익숙한 감정의 기운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시선과 기록을 통해 각자의 시간 어딘가에 머물렀던 풍경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longshu._.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