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상과 공간을 주제로 잡아 탐구하고 있다. 그 결과물이 벽(Wall) 연작이다. 벽이라는 공간과 그 앞을 스치는 일상 곧 시간을 친밀감 있게 드러내기, 나의 오랜 관심사이다.
코로나 시대다.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분수령이라고들 한다. 틀렸다. 똬리 틀고 도사려서 도통 꿈쩍을 않는다.
꼼짝없이 들어앉을 수밖에 없다. 너나 나나 벽에 갇혀 지낸다. 여러 가지 의미로 그것이 최고란다. 그래서 내 생각에, 이 시기의 시대정신은 ‘벽’이다. 여러 가지 의미를 포괄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벽은 걷는다. 여행을 한다. 벽은 노래하고 춤추고 미소를 짓는다. 벽은 전쟁을 한다. 햇살을 부비고 꽃을 듣는다. 그리하여 벽은 판목(版木)이다. 스치는 것 모두 통째로 밀어서 베껴낸다. 그 벽에 귀를 대고, 하는 말을 듣고 싶다.
벽은 터지고 갈라지고 흘러내린다. 세월의 속살을 열어 보인다. 정갈하고 규칙적이고 튼실한 벽도, 세월 속에 잠시 그렇게 섰을 뿐이리라. 그래서 눈길이 멈춘다. 나는 통째로 밀어서 베껴두고 싶다. 어느 순간 스쳐가는 사람을, 향기를, 바람 한 점을 머리맡에 두고 읽어보고 싶다.
마스크를 쓴 벽, 바깥은 없는 캄캄한 내면의 벽만 그리는 날은 아마도 오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즈음, 안쪽에서 바깥을, 작은 구멍으로 내다보는 자신이 점점 낯설지 않다. 이 갑갑한 시기가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주름 하나 꽃 그림자 하나를 잡고 그저 무심한 하루를 보내는 날이 이어지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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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이미지에 대입하면서 지나친 과장이나 생략 없이 차분하게 그려 나아간 작가의 조형 감각과 색채 미감이 관람자들을 작품 앞에 머물도록 붙잡는다.”(미술평론가 하계훈, ‘이달의 전시’ 평론 중에서, 서울아트가이드 2019년 6월호, 119면)
Q.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하, 추후 작성 예정입니다.
Q.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여행에서 마주친 온갖 다양한 볼거리들 중에서 나는 주로 벽과 인물 두 가지에 주목하였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디에나 언제나 벽은 중요한 존재다. 안과 밖을, 나와 남을 가른다. 벽으로 가려진 각각의 공간은 결국 각각의 세계를 잉태하고 길러낸다.
적어도 수백 년은 됐을 법한 온갖 가지 다양한 벽은 그 자체로도 장엄하다. 예전에 사진으로 유럽의 오래된 성이나 건물을 봤을 때는 벽은 주목의 대상이 아니었고, 당연히 거기에서 무슨 감동이랄 것은 없었다. 스페인에서 처음 그런 벽을 마주하고 골목길을 지나며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햇살 아래 그 색깔들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바깥쪽이 떨어져 나가고 돌이 깨지고 색깔이 바래도, 아니 그럴수록, 더욱 더 찬란하였다. 이후로 여행을 다닐 때마다 나는 벽을 주목하였다.
벽 앞을 한순간에 지나가는 사람들, 어느 날 오후 우연히 포착된 한가로운 걸음들이 내 눈길을 끈 것은 의도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갈 순서였겠다. 적어도 수백 년을 그 자리에 버티고 선 묵은 벽, 그 벽 앞을 스치는 물상이 빚어내는 부조화의 조화, 그것을 녹여서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
Q. 작품 활동 외에 취미 활동이 있으신가요?
주말농장에서 농사. 생명과 삶의 의미를 온몸으로 체득하는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