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는 삶의 존재이유이자, 풍경이자, 정신적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대한민국 학교와 군대를 제대했다. 그 안에 존재하는 통념과 심리적 억압은 나의 자아를 불구화시키고 기형화 했다. 외로움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외로움은 차갑고 시린 연체동물을 연상하게 한다. 그 늪에서 운명처럼 그림을 만났다. 그녀는 해방의 탈출구를 비춰주었다. 그 길은 운명처럼 나와 회화의 "존재이유"가 되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는구나" 군대에서 분대장이 했던 말이었다. 나는 미꾸라지이자 관심병사였다. 화가 고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 또한 가슴속에 억눌려 있는 무언가가 가득 차 있다. 고통스럽다. 가끔 내가 아픈 사람은 아닌가 의심될 때가 있다. 회화는 억눌려 있는 감정을 해방시키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 자유롭게 존재하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실존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세상에 그녀와 마주보고 있는 내가 존재한다. 외 모든 소리는 소거된 상태다. 나는 그녀와 대화하는 것에 온 정신과 몸을 맡긴다. 춤추듯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흐름은 음악처럼 격렬해질 때도 잔잔해질 때도 있다. 나는 그 흐름에, 운명에 순응한다.
회화는 먹고 배설하고 숨쉬는 일상적이며 습관적 행위에 근거한다.
회화는 회화가 회화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자 원동력이자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