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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11일, 약 3달간 성황리에 전시를 열어온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막을 내렸습니다. 시의적인 주제를 내세워 개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 시티 비엔날레뿐 아니라 특색 있는 장르로 차별성을 둔 전남 수묵 비엔날레와 대전 비엔날레가 새로 시작하면서 작년 가을은 유난히도 비엔날레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5월엔 베니스비엔날레가 개막하여 전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엔날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비엔날레가 무엇인지, 어떤 행사인지 물음표부터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미술과 친숙하지 않은 분들께는 ‘비엔날레’가 익숙하지 않은 단어임이 틀림없습니다. 비엔날레란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비엔날레들의 각 특징이 무엇인지 궁금하셨던 분들께 이번 미술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구 비엔날레 문화의 시작, 베니스 비엔날레
좌) 2017 베니스 비엔날레 파빌리온 전시장 입구 (출처: 베니스 비엔날레 홈페이지, labiennale.org)
우) 2017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전시된 코디최 작가의 <베네치아 랩소디_허세의 힘> (출처: ARTNEWS, artnews.com)
비엔날레(Biennale)란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으로 미술 분야에서 2년마다 열리는 전시 행사를 일컫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비엔날레는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로, 베니스 비엔날레를 계기로 ‘비엔날레’란 통상 2년마다 열리는 대규모 미술 전시 행사를 일컫게 되었습니다.

1893년 베니스 시에 의해 처음 기획된 베니스 비엔날레는 개최된 첫해인 1895년에는 ‘베니스 시 국제 미술 전시회’라는 명칭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국왕 부처가 개회식에 직접 참석하고 베네치아 대중의 인기를 얻어 20여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2년마다 국제 미술 전시회가 개최되면서 자연스럽게 비엔날레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행사의 설립의 목적 중 하나는 활발한 미술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초기 베니스 비엔날레는 작품 판매의 모든 거래를 중개했고, 제1회 전시에서도 전시 작품의 절반 이상이 판매됐습니다. 이때 미술작품을 판매하면서 받는 중개 수수료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19세기 말의 가장 큰 미술 시장으로 자리 잡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미술의 가치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상업성은 완전히 배제되었고 현재까지도 베니스 비엔날레는 비상업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 1회 휘트니 비엔날레의 안내책자 (출처 : https://www.worthpoint.com/)
베니스 비엔날레가 점차 성공하자 다른 나라들도 잇따라 비엔날레를 창설하였습니다. 1932년에는 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Whitney Biennial)가, 1951년에는 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Bienal de São Paulo)가 개막하였습니다. 이후 시드니(1973), 이스탄불(1987), 리옹(1991) 등에 나라에서 비엔날레가 개막하면서 수많은 국가와 도시들이 앞을 다투어 비엔날레를 창설하였습니다.
비엔날레의 국내 유입과 정착 과정
좌) 세계화 추진 보고 회의를 주재하는 김영삼 전대통령 (출처:MBC 뉴스데스크)
우) 광주비엔날레의 개막 기사 (출처: 경향신문)
서구권에서 시작한 국제 비엔날레는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시작하였고 어떻게 정착하였을까요? 1995년,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국제적인’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가 개막하였습니다.1) 서양에서 비엔날레가 열린 후로 약 100년의 시간이 흐른 셈입니다.

1990년대가 되어 비엔날레를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폭발적인 경제 성장과 문화 수요의 증가, 그리고 세계화라는 국제적인 물결에 편승하고자 하는 사회적 배경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11월 ‘세계화 선언’을 내놓던 당시 광주비엔날레 개최 뉴스가 나왔던 것을 고려하면 세계화라는 시대적 과제에 문화적으로 부응하고자 했던 정부의 목표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비엔날레의 개최에는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명분도 있었습니다. 광주비엔날레 조직 위원회는 1980년대 민주화 항쟁을 상징하는 도시의 광주에서 국제적인 문화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광주의 문화예술 전통과 5·18 광주 민주 항쟁 이후 국제사회 속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민주화 정신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키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광주비엔날레는 이처럼 광주 민주화 항쟁의 상처를 문화로 치유하자는 명분과 세계화의 흐름에 부응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개최될 수 있었습니다.
부산비엔날레의 전시 모습 (출처 : 부산 비엔날레 공식 블로그)
광주비엔날레의 개막은 지방 도시들도 국제적인 문화 행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1998년에는 부산 작가들이 설립하고 참여한 ‘부산청년비엔날레’, 환경미술제인 '바다미술제', 그리고'부산 국제 야외조각심포지엄'이 통합되었습니다. ‘부산 국제아트페스티벌(PICAF)’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었던 이 전시는 2002년부터 ‘부산비엔날레’로 명칭을 바꾸어 부산이라는 지역에 국한된 미술 행사에서 국제적인 미술 행사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꾀했습니다.
국내 비엔날레의 특징과 의의
위 좌)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장 입구 (출처: http://2jong.daehane.com/)
위 우) 김명혜, <담금질하는 땅>, 1995 광주비엔날레 (출처: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아래) 안성금, <부처 소리>, 1995 광주비엔날레 (출처: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제1회 광주비엔날레는 설립 초기부터 약 100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규모의 국제 미술 전시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끌었지만, 전시된 작품들이 회화를 벗어나 영상과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설치 미술이 주를 이루는 전시 방식은 1990년대 미술계에서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경향으로 당시 제1회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전시 작품의 약 80퍼센트가 설치 미술로 구성되었습니다. 미술이란 곧 회화라고 생각하는 일반 관람객에게 당시 비엔날레 전시는 다소 난해하게 여겨졌겠지만, 우리나라 미술 전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앞서 설명했듯이 청년비엔날레, 바다미술제, 조각심포지엄의 3가지 행사가 결합되었는데, 이처럼 세 가지 행사가 합쳐진 비엔날레 형태는 부산비엔날레가 세계 최초라고 합니다. 특히 부산비엔날레는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요트경기장, 고려제강수영공장, 온천천 등부산의 폐산업시설과 문화소외지역 등을 전시장으로 선택함으로써 도심 재생에 기여하고 부산을 새로이 조명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지난 2014년과 2016년도에는 부산 망미동에 위치한 고려제강수영공장(현 F1963)를 비엔날레의 메인 전시장으로 활용함으로써 F1963을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복합 명소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위) 알렉시스 레이바(Alexis Leiva Machado), <잊어버리기 위하여>, 2018 광주비엔날레
아래 좌) 임민욱, <만일의 약속>, 2018 부산비엔날레
아래 우) 천민정,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 2018 부산비엔날레
비엔날레를 빛낸 작품들과 국내 비엔날레의 성과
비엔날레가 국제적인 미술 전시 행사인 만큼 각 전시마다 주목받았던 작품들 또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볼 만합니다. 위 작품은 쿠바 작가인 알렉시스 레이바(Alexis Leiva Machado)의 <잊어버리기 위하여>라는 작품입니다. 이 천여 개의 맥주병 위에 나무로 만든 배를 설치하여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한 이 작품은 쿠바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많은 쿠바인들을 은유하여 1995년 열린 첫 광주비엔날레 전시 당시 대상에 오르는 명예를 차지했습니다. 이 작품은 난민 이슈가 증가하는 최근의 시류와 맞물려 국제적인 난민 문제와 지역 분쟁을 잊지 않기 위해 20년이 흐른 올해 광주비엔날레에 다시 등장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치적인 세력과 맞물려 작품이 이슈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은 박 전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2014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출품되지 못하는 억압을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면서 작가와 미술작품은 물론 광주비엔날레가 대중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월오월>의 광주비엔날레 전시는 무산됐으나 결국 2017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성공적으로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인사아트센터에서도 전시를 하게 되면서 <세월오월>은 억압에 굴복하지 않는 예술의 자유 의지를 담은 상징으로 거듭났습니다.
좌) Henrike Naumann, <2000>, 2018 (출처 : Frieze)
우) 천민정,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 (출처 : 부산 비엔날레)
작년 부산 비엔날레에서는 전시 주제를 극명히 드러내는 대형 설치 작업들이 특히 주목받았습니다. 독일 작가인 헨리케 나우만(Henrike Naumann)은 가상의 방을 연상케 하는 <2000>이라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독일 통일로 인한 사회 다방면의 변화를 담아낸 이 작품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누군가의 집으로 초대된 것만 같은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설치와 영상 등 다방면의 작품을 선보이는 임민욱 작가는 이산가족들이 사용했던 여러 오브제들을 커다란 극장 형태로 구성한 <만일의 약속>을 전시하면서 부산비엔날레의 주제인 ‘분단’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정치와 대중문화를 결합한 작업을 선보이는 천민정 작가는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라는 참여형 작품을 통해 대중들의 호응을 이끌었습니다. 10만 개의 초코파이를 설치하고 이를 관람객에게 먹게끔 하여 관객의 참여가 작업의 일부가 되게 만드는 이 작품은 소셜미디어에도 많은 ‘인증샷’이 올라오는 등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위) 임흥순, <위로공단>(2014) 다큐멘터리 포스터 (출처: Daum 영화)
아래 좌) 강서경, <자리 61x81> 2018 광주비엔날레 (출처: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아래 우) 스보드 굽타, <집에 가는 길 The Way Home>, 2000 광주비엔날레 (출처: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 비엔날레들은 미술계의 진흥과 국제적인 교류 차원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냈습니다. 특히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작가들과 큐레이터들은 국제적인 수상을 하거나 기획을 맡는 등의 커다란 성과를 보였습니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스보드 굽타(Subodh Gupta)는 현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 중 하나인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의 눈에 들면서 세계적인 반열의 작가로 성장하였습니다. 2002년과 2004년, 그리고 2010년에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임흥순 감독은 아시아 여성의 노동 문제를 조명한 <위로공단>(2014)으로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올해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강서경 작가와 요르단 출신 작가인 로렌스 아부 함단(Lawrence Abu Hamdan)은2018년 아트바젤(Art Basel)2) 에서 주관하는 발루아즈 예술상(Baloise Art Prize)3) 을 수상하면서 광주비엔날레의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큐레이터들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2008년 광주비엔날레 감독이었던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와 2010년에 감독을 맡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는 각각 2015년,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하면서 광주비엔날레에서의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비엔날레의 과제,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위) 옛 국군광주병원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2018 광주비엔날레 (출처: 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아래) 2018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
그러나 우리나라의 비엔날레들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합니다. 아시아를 넘어 국제적으로 교류하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의 경우 ‘국제성’을 이유로 새로운 지역성을 적극적으로 창출하지 못한 채 서구권 비엔날레의 전형을 답습하고 있다는 일부의 평가가 따릅니다.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고자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옛 국군광주병원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여 80년대 광주정신을 시각매체로 승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부산비엔날레 또한 올해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선정함으로써 방문자들에게 부산의 역사와 문화, 도시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11개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보다 약 3배 면적의 이탈리아에서는 2개의 비엔날레가, 약 98배 면적의 미국에서는 5개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가히 엄청난 숫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비엔날레들이 생긴 이유 중 하나는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 홍보와 수익 창출을 위해서 입니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비엔날레들이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홍보와 수익과는 별도로 지역의 문제를 다루고 지역사회의 특수성과 장소 특정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시선이 존재합니다.4)
지금까지 비엔날레의 역사와 흐름,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현재 미술계에서 비엔날레가 가장 권위 있고 명예로운 전시라고 여겨지는 만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비엔날레들이 짊어진 어깨는 무겁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우리나라의 비엔날레들은 좋은 성과들을 보였지만 지역성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일부의 시선을 바꾸기 위해서는 처음 비엔날레를 창설했던 목적처럼 지역사회를 포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해로, 베니스 비엔날레를 관람하며 각 지역이 지닌 목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작년에 열렸던 광주나 부산비엔날레와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배움이 될 것입니다.
용어해설
1) 동아시아에서 처음 개막한 비엔날레는 1992년 타이페이 비엔날레(台北雙年展)

2) 장소 특정성(Site-specific)은 미술 이론에서 주로 쓰이는 개념으로, 미술과 장소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고 고찰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은 특정한 장소나 공간과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미술을 의미한다.

3) 아트 바젤(Art Basel)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트 페어로 매년 6월 스위스 바젤에서 4일 동안 개최된다. 1970년 바젤에서 활동하는 화상(畵商)들의 주도로 시작된 아트 바젤은 동시대 수준 높은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국제적인 행사로, 전 세계 미술계를 리드하는 유수의 화랑 3백여 곳과 그 화랑들을 대표하는 예술가 4천여 명이 참여하는 ‘예술계의 올림픽’ 같은 행사다.

4) 스위스 아트 바젤에서 신진 작가 및 갤러리를 소개하는 '아트 스테이트먼트' 섹터 참가자 중 2명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이다.
참고자료 / 참고문헌
1) 광주비엔날레 소개, 광주비엔날레 공식 웹사이트(https://www.gwangjubiennale.org/)
2) 최태만, <분리를 넘어서>, 2018 부산비엔날레 인사말, 부산비엔날레 공식 웹사이트, (http://2018.busanbiennale.org/)
3) 2018 부산비엔날레 행사 개요, 부산비엔날레 공식 웹사이트, (http://www.busanbiennale.org/kr/)
4) 『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미술, 1999
5) 베네치아 비엔날레 공식 웹사이트 (http://www.labiennale.org/)
5)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베니스 비엔날레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광주 비엔날레
6) 두산백과
7) <화제> 국내 최초의 대규모 비엔날레 창설」, 『연합뉴스』, 1994년 12월 10일자
8) 「<이벤트> 95’ 미술의 해 주요 사업 확정」, 『연합뉴스』, 1994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