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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전 TV에서 방영된 ‘강아지 공장’ 실태가 연일 화제다. 인간의 탐욕 아래 행해지는 폭력적인 강제 교배와 허가받지 않은 제왕절개 수술까지 동물 학대 논란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소셜미디어의 타임라인을 뒤덮었다. 한편 한 달 전에는 어미 딱새가 일렬로 앉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는 사진이 환경부가 후원하는 사진전에서 입상하면서 논란이 됐다. 사진 연출을 위해 새끼들을 둥지에서 꺼냈을 거라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해당 작품의 전시는 중단됐다. 이처럼 예술에서도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들은 종종 동물 학대라는 이유로 표현의 자유와 대치되며 논란이 되는 주제다.
▲ (좌) 데미안 허스트,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우) 데미안 허스트 <Mother and Child>, 1993 @www.damienhirst.com
세계적인 예술가인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작품 ‘상어’로 유명하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1991)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상어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모터와 함께 움직이게 한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동물의 사체를 소재로 삼았고, 1993년에는 어미소와 송아지를 반 토막으로 잘라 뼈와 장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이를 동물 학대라고 비난했지만 작가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고, 이미 죽은 동물의 사체를 활용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았다.
▲ 마르코 에바리스티, <HELENA & EL PESCADOR>, 2000 @www.evaristti.com
덴마크에서 활동하는 칠레 출신의 예술가 마르코 에바리스티(Marco Evaristti)는 2000년 트라폴트 미술관에서 10개의 믹서기에 살아있는 금붕어를 넣어 전시했다. 관객은 믹서기의 ‘ON’ 버튼을 자유롭게 누를 수 있었는데, 호기심에 이끌린 관객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금붕어는 즉시 형체가 없이 갈리게 되었다. 깜짝 놀란 시민들의 신고에 경찰은 믹서기 전원을 차단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은 미술관의 디렉터 피터 마이어(Peter Meyer)가 기소되었다. 그러나 금붕어가 즉사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거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 기예르모 베르가스, <굶어죽은 개>, 2008 @wikipedia
코스타리카 출신 예술가 기예르모 베르가스(Guillermo Vargas)는 2008년 중앙아메리카 비엔날레에서 거리에서 굶어 죽어가는 유기견을 전시장에 묶어두는 전시를 할 계획을 밝혔다. 사람들은 이 전시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했고, 작가는 도살당할 개를 사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며 그 앞에 “돕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데려가시오”라는 문구를 적어두었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작가가 준비한 수십 마리의 개를 데려갔고, 시민들의 ‘선의’로 작품의 제목이었던 <굶어 죽은 개>는 단 한 마리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개월 후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전국 각지의 공원에 “돕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데려가시오”라는 팻말과 함께 쇠약한 개들이 방치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전시장에서 개를 데려갔던 사람들이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다시 내놓은 것이다. 이로써 전시회장에서 완성되지 못했던 ‘굶어 죽은 개’는 관객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동물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 사이의 논쟁은 예술계에서 끊이지 않는 뜨거운 감자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을 소재로 하는 작가들을 고소하기도 하는데, 이때 법의 심판은 나라마다 다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었는지 그 판결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가져야 할 양심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TV 프로그램으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른 동물보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금방 식지 않기를 바란다. ‘강아지 공장’ 이야기가 잊힐 때 즈음 베르가스의 <굶어 죽은 개>를 한 번 더 떠올려보면 어떨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