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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19C 영국의 귀족 갤러리 개방과 오늘날 기업의 메세나 활동
대통령 탄핵 사건과 전 대통령들의 부정이 밝혀지면서 기득권층은 부의 재분배와 사회 안정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가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 Oblige) 개념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봉사와 기부에 솔선수범하고 전쟁 참여와 희생을 명예롭게 여기던 고대 로마 귀족들의 태도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로마인들이 주변국들의 끊임없는 견제를 극복하고 천 년 동안 거대 제국을 유지한 원동력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혁명으로 격변기에 놓여있던 1808년 프랑스에서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Gaston Pierre Marc)에 의해 개념화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여겨진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미술에서는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희소성 있는 미술품을 소유하고 감상하는 취미는 오랫동안 소수의 상류층만이 누리던 전유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득권층이 사회환원에 대한 사명감을 띤 채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사례와 그 의미를 되짚어보고, 오늘날 한국 미술계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Domenico Remps, <Cabinet of Curiosities>,1960, 캔버스에 유채
David Younger, <Archduke Leopold Wilhelm in his Gallery>, 1647, 청동에 유화
로마제국이 몰락하고 찾아온 중세 시대에 미술은 종교와 권력을 상징하는 도구적 가치로서만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문예 부흥기인 르네상스시대가 도래하자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는 원정 항해로 유입된 이국적인 물건 수집이 유행하였는데, 수집품 진열 공간이 ‘캐비닛(Cabinet of Curiosities)’이라고 불리면서 미술작품만을 모아두는 곳을 구분하기 위해 ‘갤러리(Gallery)’라는 용어가 탄생하였습니다. 귀족들의 수집욕구가 과열되면서 17세기 후반부터는 프랑스와 영국을 주축으로 미술작품의 보존과 갤러리의 대중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의회 중심 정치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1688년 명예혁명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일찍 민주주의가 시작된 영국에서는 귀족의 존재가치에 힘을 실어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이 미술의 대중화 논의와 함께 대두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19세기 초반에는 귀족들이 개인 저택 내부에 위치한 갤러리를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풍조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브너 가족의 초상화
Charles Robert Leslie, <The Grosvenor Family>, 1825, 캔버스에 유채
(왼쪽부터) 2대 그로브너 백작의 갤러리 (사진) | 2대 스태포드 후작의 갤러리 (사진) Ⅰ 존 레스터 경의 갤러리 (그림)
출처 : (왼쪽부터) Getty Images (http://www.gettyimages.com/) | Angelyn's Blog (https://angelynschmid.com/) | Lindsey Harrison, 「Sir John Requests the Pleasure」, THE KNUTFORD TIMES, 2013
2대 스태포드 후작(Marquis of Stafford)은 역사상 최초로 개인 갤러리를 일반인들에게 정기적으로 개방한 귀족입니다. 그는 1806년부터 20여 년 간 5월부터 7월까지 수요일마다 깨끗한 옷을 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갤러리를 개방하였습니다. 후작의 갤러리에는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 틴토레토(Tintoretto), 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를 비롯한 이탈리아 거장들의 대작들이 300여 점이나 소장되어 있었으므로 일반인들로서는 접하기 힘든 고급문화 향응의 기회를 제공받은 셈이었습니다. 후작은 작품들을 화파와 장르에 따라 구분하여 벽에 걸었고 갤러리에 하인들을 배치하여 그들이 관람자들에게 작품 설명을 해주도록 함으로써 대중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후작의 갤러리가 큰 인기몰이를 하자 다른 귀족들도 앞다투어 갤러리를 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2대 그로브너 백작(Earl Grosvenor)은 1808년부터 5월부터 7월 사이 금요일마다 갤러리를 공개하였습니다. 이 갤러리는 소장품들이 속한 시대와 장르가 다양하다는 점과 붉은색으로 치장한 특유의 사치스러운 공간 덕분에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준남작이었던 존 레스터 경(Sir John Leicester)은 1818년부터 소장품이 영국 미술로만 이루어진 자신의 갤러리를 개방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국왕이었던 조지 4세(George Ⅳ)에게 대중의 애국심 함양과 미술의 대중화에 이바지한 이력을 인정받아 남작 작위를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19세기 초반에 영국 귀족들은 수집한 미술품들을 개인적으로 즐기기보다는 공적 가치로 환원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개인 갤러리가 대중과 소통하는 다원적 기관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회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을까요? 자본주의 체계에서 이 개념은 기득권층의 존재와 특권의식을 논리적으로 정당화시킨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상대적으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이 공동체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 책임을 각성하는 보다 수평적인 관점이 요구됩니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통해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에서도 이러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 실천의 한 예로 기업의 메세나(Mecenat) 활동이 있습니다. 기업 메세나 활동이란 기업이 사회환원을 목적으로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하며 재정적 후원에서부터 창작을 위한 공간 제공 또는 직접 참여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은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 기업이 미술품의 공공적, 문화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설립한 기업미술관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좌) <백자청화매죽문호>, 조선 15C, 국보 제222호, 호림박물관 소장 (http://horimmuseum.org/)
(우) 삼성 리움미술관의 전경 (http://leeum.samsungfoundation.org/)
서울 농약 회장이었던 고(故) 윤장섭이 설립한 호림아트센터와 삼성미술관 리움이 대표적인 기업미술관입니다. 호림아트센터는 국보 8점, 보물 53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삼성미술관 리움의 소장품들 가운데 국보는 17점, 보물은 10점에 이릅니다. 물론 약 60여 점의 국보급 유물을 소장한 국립중앙박물관과 비교하면 규모는 작지만, 막대한 금전적 대가와 엄격한 보존 관리 책임까지 감수하면서도 이러한 미술품들을 사기업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기업미술관들이 미술품의 역사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윤장섭은 광복 이후 혼란기에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컬렉터가 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좌) 한미사진미술관 내부 (http://www.photomuseum.or.kr/)
(우) 아트센터 나비 내부 (http://www.nabi.or.kr/)
(좌) 대림미술관 내부 (http://www.daelimmuseum.org)
(우) <헨릭 빕스코브-패션과 예술,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 展, 대림미술관 (http://www.daelimmuseum.org)
장르의 다양성을 통해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의 위계가 사라진 현대미술의 특성을 교육하는데 앞장서는 기업미술관들도 있습니다. 아트센터 나비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부인이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애(令愛)인 노소영 관장이 운영하는 미술관으로서 미디어아트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한미약품이 2004년에 설립한 한미사진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부설기관으로 한미사진아카데미와 한미사진 문화연구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보수적인 미술계에서 저평가되어왔던 미디어아트와 사진에 주목하고 이들의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고자 노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대림미술관은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이 한국메세나협회 창립멤버이기도 한 만큼 메세나 정신이 투철한 미술관으로서 보수적인 미술계에서 주저하는 대중적인 전시를 기획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5년 하반기에 대림미술관이 개최한 헨릭 빕스코브(Henrik Vipskov)展은 패션을 순수미술의 경계 안에 포함시킴으로써 미술의 지평을 넓히고 있으며 동시에 새로움을 원하는 대중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기업 미술관들은 미디어아트, 사진, 패션 등 다양한 장르를 활용하여 현대미술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공공심 입증을 명예로 여기던 로마시대 귀족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19세기 영국에서 귀족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갤러리의 대중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귀족 갤러리의 개방이라는 형식으로 발현되었습니다. 귀족들의 갤러리 개방이 대중에게 미술품 감상의 기회를 마련해주는데 그쳤다면, 오늘날 한국의 기업미술관들은 희귀 미술품 공개와 더불어 대중에게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거나 대중의 취향을 반영한 전시를 기획하는 등 보다 다각적인 방식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기업미술관이 기업의 마케팅 일환으로 활용되거나 조세 혜택의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기업들이 공동체의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업미술관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기업이 누리는 특권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대중과 시선을 맞추며 소통한다면 좀 더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 정신이 우리 사회의 다른 영역으로도 확산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참고문헌
김형숙, 『미술 전시, 미술관』, (예경, 2001)
Jameson, Anna. Companion to the Most Celebrated Private Galleries of Art in London (London: 1844)
Humfrey, Peter. “The Stafford Gallery at Cleveland House and the 2nd Marquess of Stafford as a collector,” Journal of the History of Collections, 28:1, (2016)
Meeson, John. Catelogue of the Pictures belonging to the Marquis of Stafford at Cleveland House, (London: M. Bummow. 1814)
Waterfield, Giles. “The Town House as Gallery of Art,” London Journal 21:1.
Taylor, Brandon. “National Gallery, London: For “all ranks and degrees of men,” ed., Carole Paul, The first modern museums of art: the birth of an institution in 18th – and early 19th – Europe (Los Angeles: Getty Publications, 2012)
Chun, Dongho. “Public Display, Private Glory,” Journal of the History of Collections 13:2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