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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화가, 꽃을 이야기하다
서양의 꽃 정물화(Still-life)와 동양의 화훼화(花卉畵)
꽃에 대한 관심은 지역과 시대 그리고 세대의 구분 없이 지속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하거나 진심으로 축하와 위로의 마음을 전할 때, 그리고 공간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도구로써 꽃을 활용해왔습니다. 이렇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다양한 용도로 꽃을 사용해 왔고, 심지어 꽃이 피는 시기나 색깔, 특성들을 상징화하여, 꽃들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번 미술이야기에서는 동양과 서양, 그리고 시대와 성별을 막론하고 미술의 역사와 함께한 '꽃을 그린 그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서양과 동양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한 꽃 그림들이 주목을 받았던 17세기 네덜란드와 조선시대의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서양의 ‘꽃 그림’ 발생과 네덜란드 꽃 정물화
<꽃을 든 여성>, 폼페이 벽화, AD 50-60
꽃을 소재로 한 서양회화의 기원은 고분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세의 삶을 중시했던 고대 그리스로마의 모자이크나, 폼페이의 벽화가 그 예입니다. 당시 벽화를 살펴보면 인물이나 풍경 옆에 화초나 꽃바구니를 그린 형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꽃 그림을 그린 것은 기원전부터 였으나, 17세기 네덜란드에 이르러 꽃을 독립적인 소재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16-17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인해 네덜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의 화가들은 더이상 제단화를 그릴 수 없게 되었고, 가장 큰 수입원을 잃게 되었습니다. 화가들은 공인된 특기를 살려 의도적으로 새로운 주제들을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이 시기 네덜란드는 정치•경제적으로 대립관계에 있었던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대외무역의 성과로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상황과 플랑드르 양식의 세부를 꼼꼼히 묘사하는 성향이 맞물려 결국 네덜란드에서는 정물화라는 새로운 장르의 미술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1)

네덜란드의 정물화는 소재나 의미에 따라 식탁 정물화나,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 꽃 정물화, 그리고 사치스러운 프롱크(Pronk) 정물화로 나뉘어 그려졌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꽃 정물화가 당대 네덜란드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잘 맞물리면서, 크게 성행 했습니다. 네덜란드는 1602년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고 튤립, 양귀비, 수선화 등의 꽃을 페르시아와 소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여오는 역할을 하게됩니다. 이러한 꽃들의 대부분이 네덜란드 항구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되었기 때문에 꽃은 아시아와의 21년 무역을 독점하게 된 네덜란드의 긍지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꽃을 구입하는 것 외에도, 그림으로 남기고자 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얀 브리겔의 꽃 그림과 그림의 상세 모습
얀 브리겔, <꽃 정물화>, 1607-8, 패널에 유화, 67x51cm, 프라하 국립박물관
당시 꽃을 기록한 화가로는 꽃 정물화의 대가, 얀 브리겔 (Jan Brueghel, 1568-1625)을 들 수 있습니다. 얀 브리겔은 자크 드 헤인 (Jacques de Gheyn II, 1565-1629), 룰란트 사베리(Roelant Savery, 1576-1639)와 더불어 조그만 화병에 화려하고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수직으로 꽂혀 있는 형태, 그리고 어두운 화면을 배경으로 하여 정물에만 빛을 처리한 양식을 기반으로 전형적인 꽃 정물화의 구조와 기틀을 만든 화가입니다. 꽃 그림과 풍경화에 특히 재능을 보였던 얀 브리겔은 섬세한 질감 묘사로 비단을 의미하는 Velvet이라는 애칭을 얻어, 비단 브리겔(Velvet Brughel)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동양의 ‘꽃 그림’과 조선시대 화훼화
네덜란드의 꽃 정물화가 사회•경제적인 발전으로 인한 화려한 부의 표현이었다면, 동양의 꽃 그림은 화려하기보다는 담백하게 표현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양의 꽃 그림에 대해서는 한국미술, 특히 한국화의 정립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조선시대 화훼화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에서도 '꽃'을 소재로 한 회화는 고분벽화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서양의 세속적인 성격보다는 종교적인 성격 즉, 도교와 불교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그러한 영향으로 동양에서는 묘주의 사후세계에서의 안녕을 기원하고, 현세의 삶과 같은 풍요로움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은 고분벽화를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도교와 불교의 영향권에 있었던 백제의 고분벽화에서도 이와 같은 이유로 연화문이 자주 등장합니다.
백제시대의 고분벽화에 등장한 '연화문'의 모습
<연화문>, 부여 능산리 고분, 백제시대 유물
독립된 범주이자 회화로서 '꽃'을 소재로 한 그림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화훼화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이 남아있습니다. 화훼화는 풀과 꽃, 그릇, 채소와 함께 그린 그림으로, 함께 그려진 대상에 따라 화조화(花鳥畵), 화훼초충화(花卉草蟲畵), 절지화(折枝畵)*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2) 특히 영•정조(英•正祖) 시대에는 조선의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화훼에 대한 문인들의 관심이 증대하였습니다. 그들은 정원을 조성하여 다양한 꽃을 기르거나, 화훼를 주제로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꽃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들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화훼는 대부분 문인들의 취향에 따라 선택되어 그려졌는데,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梅蘭菊竹)를 의미하는 사군자(四君子)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3) 또 중국의 명•청(明•淸) 시대에 간행된 그림집인 화보(畵譜)가 유입되면서, 국내에 이미 퍼져있던 훼화애호사상과 함께 화훼화가 더욱 성행하는 기틀이 마련됐습니다.
화조화 / 화훼조충화의 예시
(왼쪽부터) 심사정, <화조도(花鳥圖)>, 1767년, 종이에 수묵, 136.4×28.2cm, 국립중앙박물관 /
남계우, <화접도(花蝶圖)>, 19세기, 종이에 수묵, 127.9x28.8cm, 국립중앙박물관 /
남계우, <화접도(花蝶圖)>의 상세.
조선시대 화훼화는 여백을 두어 서양의 꽃 정물화의 화려한 면모에 비해 담백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특히 조선 말기에는 수묵에 채색을 더한 그림이 두드러지기 시작하여, 실재에 가깝게 묘사한 작품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작품에 그려진 형태들의 의미를 되새기는 목적을 넘어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사실적인 묘사가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예로 화가 남계우(南啓宇, 1811-1890)의 작품을 보면 세필을 이용한 나비와 식물의 정확한 묘사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점 덕분에 그의 작품은 조선시대 나비에 대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현대미술 작가들의 ‘꽃 그림’
현대에 이르러 꽃을 주제로 한 그림은 새로운 요소들과 접목되어 그 다양성이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작가들은 기존의 틀과 형식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새로운 재료의 탐구, 새로운 구성의 실험 등 점차 다양한 시도들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정창균, <명경지수>, 2014, 캔버스에 유채, 130x260cm

명경지수-피고지고

정창균 (Joung, ChangKyeun)

130x260cm (변형 150호)

정창균 작가는 앞서 언급했던 서양의 꽃 정물화의 특징에 서울의 풍경을 접목시켜 사실적이면서도 조용한 아름다움을 담아냈습니다. 어두운 배경의 중심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꽃다발의 묘사는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현대까지 이어진 정물화의 대표적 형식에 근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치 진공 상태와 같이 시간과 공기가 멈춘 듯 고요한 감각을 표현된 화면은 <장자(莊子)>에 등장한 ‘명경지수(明鏡止水)’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명경지수’는 밝은 거울과 정지된 물이라는 뜻으로,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꽃 정물화에 장자의 개념을 담은 작품 <명경지수- 피고지고>는 국적과 시대를 넘나드는 구성과 형식을 아우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좌) 제미영, <모란>, 천에 바느질콜라주/ 비즈, 2014

모란

제미영 (Je, Mi-Young)

76x128cm (60호)

과거의 선조들은 민화에 길상(吉祥)적 의미가 있는 꽃이나 물고기 등을 그려 넣어 일상의 안녕과 행복을 염원하곤 했습니다. 제미영 작가는 전통적으로 길상의 의미를 가진 모란과 연꽃 등과 함께 현대인들의 소망을 담은 종이배나 종이학과 같은 상징물들을 천을 잘라 콜라주 하는 기법으로 전통 민화를 재해석했습니다.
지금까지 동서양의 꽃을 주제로 한 회화 작품을 네덜란드 꽃 정물화와 조선시대의 화훼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한 나라와 단편적인 시대 만으로 ‘꽃 그림’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네덜란드 꽃 정물화와 우리나라 조선 화훼화는 현대까지 이어지는 ‘꽃 그림’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에 미술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이렇게 꽃을 소재로 한 그림은 때로는 네덜란드인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수단이었고, 때로는 군자의 덕목을 표현하고 문인들의 취미를 반영하는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꽃 그림'을 감상할 때에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맥락을 이해한다면 더 즐겁고 폭넓은 미술 감상이 될 것입니다.
용어해설
1) 플랑드르 : 16세기까지 네덜란드와 벨기에 사이에서 발전한 미술. 그 중심은 회화였으며 얀 반 아이크 (Van Eyck, 1385-1441), 얀 반 브리겔(Jan Brueghel, 1568-1625) 등 자연주의풍의 독자적인 작품을 전개하였다. 고딕의 전통에서 나왔으면서도 생활과 풍토에 밀착된 소박하지만 정밀한 관찰에 입각했다

2) 화조화 / 화훼조충화 / 절지화
* 화조화: 꽃과 새를 그림
* 화훼초충화: 꽃, 풀, 새, 채소, 벌레를 그림
* 절지화: 꽃이 피어있는 가지의 일부를 그림

3) 사군자: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 깊은 산중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트리는 난초, 늦은 가을에 첫 추위를 이겨내는 국화,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하는 대나무의 네 가지 식물의 특성을 군자의 덕목과 연관 지어 시(時), 서(書), 화(畵)에 드러난 것
참고문헌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이종승 역. 예경, 2003
최정은,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바로크시대의 네덜란드 정물화』 , 한길아트, 1998.
박영진, 「17세기 네덜란드 꽃정물화 연구-사회경제사적인 관점에서」,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강지원, 「19世紀 朝鮮 寫意花卉畵의 樣相 - 연화도와 모란도를 중심으로 」, 『미술사학』, 31, 2016, pp.77-116.
안형정, 「네덜란드 “꽃정물화”의 상징과 현대적 재해석 연구」, 『한국화예디자인학연구』, 28, 2013, pp.3-24
이한순, 「17세기 초 네덜란드의 꽃정물화: 16세기 식물학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미술사학보』, 25, 2005, pp.343-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