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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흰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로 그렸던 들판 위의 집, 공책 귀퉁이에 연필로 채워 나갔던 만화 캐릭터들, 지점토와 고무찰흙으로 빚어냈던 동물의 형상 등 여러 이미지와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들을 떠올릴 텐데요. 이는 액자로 마무리된 캔버스 형태가 여러 매체를 통해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가장 친숙한 미술작품의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NOBODY

김주형

91x117cm (50호)

위 작품은 오픈갤러리 김주형 작가의 <NOBODY>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김주형 작가는 캔버스가 드러난 그림의 뒷면을 그림으로써 작가와 재료, 그리고 감상자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최소화함하고, 모든 외적인 요소를 걷어낸 그림의 민낯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날 것 그대로의 진짜 ‘그림’이 아닐까요?

9월 미술이야기의 주인공은 ‘캔버스’입니다. 그동안 늘 물감과 이미지들에 가려져 그 맨얼굴을 만나지 못했던 그림의 실체에 한 번 주목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캔버스 형태의 그림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미술 안에서 캔버스라는 미술의 형태가 갖는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 살펴보려 합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캔버스란 “유화를 그릴 때 쓰는 천”으로 린넨이나 삼베 같은 억센 섬유로 균일하게 짜낸 직물에 아교, 아마인유, 산화 아연 등의 각종 재료를 발라 처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술의 시작이 캔버스가 아니었듯 캔버스도 처음부터 미술의 재료로 쓰였던 것은 아닙니다.

최초의 캔버스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섬유로 알려진 ‘삼(hemp)’으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옷감으로 쓰이기 시작한 직물이기도 한데요. 기원전 1,500년경부터는 인도를 중심으로 ‘목화(cotton)’를 사용한 직물이 출연했고, 18세기 유럽의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린넨(linen)’과 합성섬유 등을 이용한 캔버스가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었습니다.
평직으로 짠 직물의 예시
평직(平織)1)으로 짜여진 캔버스의 견고한 내구성과 방수성을 깨달은 인류는 캔버스를 밧줄과 매듭, 배의 돛, 천막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원후 8세기경 북아프리카의 무어인(the Moors)들이 세력을 넓히게 되면서 유럽 전역에 목화와 캔버스가 전해졌고, 해상무역이 발달했던 베네치아와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 등지에서는 이를 널리 활용하였습니다.
캔버스를 사람들이 미술의 재료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15세기경이었습니다. 중세 유럽 회화를 지배했던 ‘템페라(tempera) 기법’2)의 한계를 인식한 화가들은 다채로운 발색(發色)을 특징으로하는 ‘유화(oil painting)’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흡수력이 약한 나무 패널과 석고 회벽 대신 유화 물감의 질감과 빛 투과성 등의 특성을 살리는 데 적합한 캔버스를 바탕 재료로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캔버스에 그려진 유화'
‘캔버스에 그려진 유화’라는 회화의 형태는 캔버스를 다양한 영역의 재료로 활용하고 있었던 도시국가 베네치아에서 가장 빠르고 안정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동북쪽에 위치한 베네치아는 수상 도시로서 일찍부터 해상 무역이 발달했기 때문에 유화의 출연 이전부터 이미 캔버스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는 베네치아의 고온다습한 지중해성 기후 때문인데요. 고심하던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습기와 온도에 약하고 쉽게 곰팡이가 스는 나무 패널과 석고 회벽대신 형태보존성이 뛰어나고 운반이 용이하며, 가격까지 저렴했던 캔버스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화가들 중 거장 티치아노 베첼리오 (Titian, 1488-90년경~1576년)를 필두로 캔버스 유화의 발달에 적극적으로 기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베네치아의 회화가 동시대의 타지역 회화들과는 확연히 다른 색감과 질감 등을 갖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위) 티치아노(Ticiano Vecellio), <우르비노 비너스>, 캔버스에 유채, 1538 | 우피치 미술관 소장
(아래)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 ‘10인 평의회의 방’의 벽화. 너비가 약 24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 중 하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캔버스는 또다른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인해 직물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캔버스는 더욱 저렴하고 대중적인 재료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자연 속에서 생생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에 집중한 낭만파3)와 인상파4) 화가들을 중심으로 야외에서 이동하며 사생(寫生)하는 풍조(Plein-Air Painting)가 유행하면서 휴대가 용이한 작은 크기의 캔버스 위주의 작업이 회화의 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특히, 경제사정이 풍족하지 않았던 대부분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캔버스는 예술혼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이었습니다.
이처럼 캔버스는 수세기 동안 화가들로 하여금 다양한 한계를 극복하게 해준 미술사의 주역이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과감한 실험 정신을 실천하며 전통을 탈피하는 예술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이 등장하면서 예술가들은 점차 ‘벽에 걸린 캔버스 형식의 회화’를 깨뜨려야 할 틀처럼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닥에 눕혀진 캔버스 위로 물감을 뿌리는 잭슨 폴록
20세기 미국 추상표현주의 양식인 ‘액션 페인팅’의 선구자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그러한 생각을 가진 대표적인 예술가였습니다. 폴록은 커다란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그 위로 물감을 흘리고, 끼얹고, 튀기고, 쏟는 등의 역동적인 행위 자체를 작품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의 자유로운 작업 방식은 캔버스를 이젤에 놓인 그림의 바탕으로만 여겼던 전통적인 관점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서양의 예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폴록이 한창 활동 중이었던 1954년, 일본에서는 화가 요시하라 지로(吉原 治良, 1905-1972)와 시마모토 쇼조(嶋本 昭三, 1928-2013)가 아방가르드 예술을 표방한 ‘구체미술협회(具体美術協会, The Gutai Group)’5)를 창립했습니다. 협회의 장(長)이었던 요시하라 지로는 1956년 발표한 ‘구체미술선언문’에서 “구체미술은 물질을 왜곡하지 않는다...우리는 순수한 창조력 고유의 가능성을 믿기로 했다”고 말하며 재료의 물성(物性)과 미술의 형식적 속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예술의 물결에 가세했습니다. 잭슨 폴록을 포함한 표현주의 화가들의 영향을 받기도 했던 구체파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행위와 재료들이 만났을 때 생겨나는 우연적인 결과물까지도 작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전위적인 정신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재료가 된 것은 다름 아닌 가장 전통적이고 기초적인 미술재료로 여겨졌던 캔버스였습니다.
일례로, 구체파의 일원이었던 무라카미 사부로(村上 三郎, 1925-1996)는 협회의 첫 단체전(1955)에서 나무틀에 종이를 씌워 캔버스처럼 보이도록 만든 겹겹의 벽으로 뛰어드는 강렬한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50년대 전후로 일본인들이 겪었던 좌절과 혼란을 향한 도전을 상징하며, 퍼포먼스의 결과로 생겨난 찢겨진 캔버스벽들은 과거와 전통으로부터의 탈출, 혹은 재료와 예술가의 격렬한 접촉 그 자체를 상징한다고 작가는 밝혔습니다.
평생에 걸쳐 일본의 구체파를 이끌었던 요시하라 지로도 그의 작품 시리즈를 통해 캔버스에 상징성을 부여했습니다. 생애 후반에 선종 불교(Zen Buddhism)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진리의 깨우침을 상징하는 원을 많이 그렸는데, 흰색의 원을 그리기 위해 원의 부분은 캔버스의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남겨두고 그 외의 여백을 검게 칠하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그동안 물감으로 가려져왔던 캔버스의 맨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날 것 그대로의 재료는 작품이 될 수 없었던 전통적인 회화의 상식을 단번에 깨는 일이었습니다.

캔버스가 있는 공간6 The space where canvas in

권구희

163x130cm (100호)

캔버스 자체를 소재로 한 새로운 관점의 미술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권구희 작가의 작품 속에서 캔버스는 상상과 현실이 혼재하는 공간으로서 예술가의 창조적 자유를 상징합니다. 작가가 ‘캔버스 시리즈’라고 부르는 연작 속에서는 작가의 붓질로 채워지길 기다리는, 혹은 채워지는 중인 캔버스들이 미술의 무한한 가능성과 그림 그리는 행위 그 자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서리

이겨레

130x89cm (60호)

캔버스를 그림 속의 이야기와 현실을 잇는 매개체이자 물리적인 틀로 인식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캔버스가 물건으로서 차지하는 영역을 수용하여 작업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겨레 작가는 캔버스의 모서리를 밀어내거나 혹은 기대고 매달리는 등 캔버스를 실재적인 공간으로 여기고 다양한 행동을 취하는 인물들을 그립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캔버스가 더 이상 단순히 물감을 바르기 위해 존재하는 밑바탕이 아니라 회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과 동등한 ‘주연’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화가들이 점차적으로 애용하게 된 미술 재료였던 역사 속의 캔버스부터 예술의 형태적 한계를 상징하는 미학적 개념이 된 현대의 캔버스까지 다양한 시대적 맥락 안에서의 캔버스를 살펴보았습니다.

혼합매체예술(mixed media art)이 대두되고 회화와 비(非)회화 장르의 경계가 더이상 분명하지 않은 현 시점에서 캔버스가 가진 의미와 효용성을 논하는 것은 다소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의 역사와 호흡을 함께 한 지난 수백 년 동안 캔버스는 그 외적인 형태는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함축하는 의미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분명 더해져 왔습니다. 또한, 흔히 ‘포스트모던’6) 으로 설명되는 현 시대에서 캔버스는 그 용도와 상징성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디지털화로 인해 많은 것이 비물질화 되어가는 우리 시대 안에서 캔버스는 실재(實在)의 세계와의 물질적인 교감과 구체적인 형태가 주는 감동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져도 좋을 것입니다.
용어 해설
1) 직물에 체크무늬가 만들어지는 짜임. 씨실과 날실이 각각 한올씩 교차하며, 줄마다 하나의 실이 교차된다.
2) 아교나 달걀노른자로 안료를 녹여 만든 불투명한 그림물감. 또는 그것으로 나무 패널과 석고 회벽 등에 그린 그림. 템페라 물감은 재료 특성상 마르는 속도가 아주 빠르기 때문에 색을 서로 섞어 칠하거나 두껍게 발라 질감을 표현할 수 없고, 유화와 달리 부드러운 색의 흐름을 표현하기 어려워 사용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3) 계몽주의 합리적 사고나 고전주의의 형식세계에 대한 반발로서 태어나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색채를 지닌 예술 사조
4) 자연이 작가에게 주는 순간적인 인상을 작품으로 표현하려는 회화의 사조. 대표적인 화가로는 마네, 모네, 드가, 르누아르 등이 있다.
5) 독일에서 처음 개념화된 ‘구체미술’을 표방한 일본 예술가들의 모임. 1954년에 창단되어 요시하라 지로가 사망한 1972년까지 지속되면서 혁신적인 스타일로 일본의 미술을 이끌었다. 총 59명의 예술가들이 소속되어 활동했다. 일본에서의 구체미술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로 절망에 빠진 일본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여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요구했던 군국주의적 관습에 저항하는 파격적인 실험정신과 독자성을 강조한 미술 운동이었다. 구체미술은 원래 네덜란드 화가인 반 되스부르크(Theo van Doesburg, 1883-1931)가 1930년에 추상미술에 대해 언급하면서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구체미술은 자연에 뿌리를 두지 않은 대신, 미술 자체의 형식적 속성과 기하학에 바탕을 둔 미술을 의미한다. 1930년에 반 되스부르크는 “한 가닥의 선, 하나의 색채, 하나의 면 이상으로 구체적인 것이 있을까... 여자, 나무, 소 등은 자연의 존재로서는 분명히 구체적이지만, 회화적 존재로서는 면이나 선보다 훨씬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막연한 환영”이라고 말하면서, 추상미술, 추상회화 대신 구체미술, 구체회화의 명칭을 제안하였다. 이 용어는 1933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앨버스Josef Albers(1888~1976)와 빌Max Bill(1908~1994)이 구체미술을 전파하려고 노력한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
6) 객관적인 실재가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가장 최근의 시대 이념. 재현에 대한 회의와 함께 개성주의와 실험, 연속의 측면을 가진다.
참고 자료 / 참고 문헌
Ⅰ)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8609100
Ⅱ) http://www.123canvas.com/canvas-history.html
Ⅲ) https://en.wikipedia.org/wiki/Oil_painting#cite_note-4
Ⅳ) https://www.quora.com/Which-is-the-first-painting-ever-done-on-canvas
Ⅴ) http://www.visual-arts-cork.com/plein-air-painting.htm
Ⅵ) https://www.britannica.com/art/plein-air-painting
Ⅶ)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Jackson-Pollock
Ⅷ) http://web.guggenheim.org/exhibitions/gutai/data/manifesto.html
Ⅸ) http://japanartincontemporary.altervista.org/saburo-murakami/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p. 419, 1950
알렉산드라 먼로, <Japanese Art After 1945 Scream Against the Sky>, p. 83–98,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