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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곁에 두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언제부터였을까요? 자연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색을 자신만의 미적 감성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인간의 욕구는 태초부터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삶을 영위하는 데에 기본적인 조건인 의식주 속에도 색(色)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왔고, 단순한 치장의 목적, 또는 위험 요소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인간은 자연의 동식물만큼 강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색을 이용하여 자신과 주변을 꾸미는 것은 생명 유지를 위해서만이 아닌, 자연에 대한 일종의 동경심이었을지 모릅니다.
오늘날에 있어 자연의 아름다운 색채를 표현하는 것은 재료에 대한 연구와 표현 방식의 훈련을 통해 더욱 접근하기 쉽고, 체계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인간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영위함에 있어 갈증을 느낍니다. 그것이 안료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 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미술 이야기에서는, 인류의 역사 속 안료에 대해 알아보며 그중 천연안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안료는 물감의 발색 성분으로 유기용제, 기름, 수지, 물 등에 녹지 않는 색을 갖는 미세분말을 뜻합니다. 안료의 공업화로 인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감으로는 아카시아 수목의 액체로 만들어진 아라비아 고무액을 안료와 혼합한 수채물감, 건조성이 강한 식물 유지인 건성유 또는 기타 보조제 등 여러 혼합재로 이루어진 유화물감, 물에 거른 석회에 소량의 접착제를 혼합여 굳힌 파스텔 등이 있습니다. 안료의 공업화 이전에는 접착제의 개발이 활발하지 않았기에 석회 반죽이 마르기 전 빠르게 안료를 덧입히거나 동물성 단백질인 계란 노른자, 또는 동물의 뼈와 가죽 등을 고아 만든 아교(阿膠), 물고기의 부레를 말린 어교(魚膠) 등을 사용했습니다. 과거부터 작품 제작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안료, 그중 우리가 알아보고자 하는 천연안료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천연안료의 원재료와 색상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색은 자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흙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순환의 과정은 인간사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광물성 안료는 인류 역사에 있어 색의 구현을 위한 최초의 재료가 됩니다. 천연안료는 적색, 황색, 녹색, 청색, 백색, 흑색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고, 그러한 안료들은 적철석, 황토, 뇌록, 청금석, 남동광 등의 광물 또는 흙, 그리고 조개의 풍화작용, 소나무의 그을음 등 자연의 재료에 공정 과정을 거쳐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 천연안료들 중 청색의 천연안료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13세기에 접어들면서 교회법전은 가톨릭 전례복의 색을 표준화하는데, 성모상에 청색을 칠하도록 규정했다고 합니다. 이후 청색은 성모마리아의 색으로 여겨졌고, 화가들은 울트라마린, 아주라이트 등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적합한 푸른색을 낼 수 있는 것은 울트라마린이었는데, ‘바다(marine),’멀리’(ultra)라는 어원을 가진 울트라마린의 원료 청금석은 당시 바다 건너 동방의 아프가니스탄에서만 구할 수 있었고, 그 값이 황금에 필적했으며 때로는 더 비싸기도 했다고 합니다. 가공되지 않은 준보석급의 원석을 수입하여 힘든 정련 과정을 거쳐야 했으니, 당시 그림을 주문했던 부자들, 또는 화가의 후원자들이 신앙심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재료는 없었을 듯합니다.
미켈란젤로, <그리스도의 매장>, 1510 |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1564)의 작품인 <그리스도의 매장>의 오른쪽 하단에는 누군가를 그려 넣기 위한 빈 공간이 눈에 띕니다. 이는 성모 마리아를 그리고자 했던 자리로 추측되는데, 미처 그리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매우 비쌌던 울트라마린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안료는 당시의 사회상을 이해하고 그림 속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되기도 합니다.
천연안료와 화학안료
1999년을 기점으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일본의 복원 전문가들에 의해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명작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전문가들은 암모니아와 소듐을 혼합한 특수약품을 사용하여 작품에 켜켜이 낀 먼지 층을 제거했고, 그 결과 미켈란젤로가 처음 사용했던 안료의 색상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물질을 제거함으로써 높아진 채도, 명암과 밀도를 필름 벗기듯 한 겹 거둬낸 듯 다소 생경한 색감 때문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물론 화려하고 밝아진 원화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아름다운 것을 향유하고자 하는 감상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으며, 연구적 가치 또한 높아졌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복원 전(좌)과 복원 후(우)의 비교
미켈란젤로, <천지창조>의 일부, 1505~1512 | 로마 바티칸궁전 소장
천지창조는 프레스코화(Fresco)의 대표작입니다. 프레스코 기법은 석회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마르기 전에 그 위에 안료를 얹어서 형태와 색감을 표현하는데, 숙달된 실력을 가진 화가가 아니면 어려운 기법입니다. 접착제나 작품의 안정성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당시에는 바탕층과 안료의 성분을 맞춤으로써 보존과 유지에 안정적인 광물인 천연안료를 사용했습니다. 광물성 안료인 천연안료는 유지력과 보존에 있어 탁월함을 자랑하기에 화학안료와의 큰 차별성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명화 중, 화가의 의도와 전혀 다른 색감을 보이는 작품이 있습니다.
렘브란트 반 레인, <프란스 바닝코크 대장의 부대>, 1942 |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소장
렘브란트 (Rembrant van rijn, 1601~1669)의 ‘야경’이라고 불리는 작품의 정확한 제목은 <프란스 바닝코크 대장의 부대>입니다. 렘브란트는 주변을 어둡게 하고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만 밝게 처리해 시선을 끄는 명암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밤의 풍경을 그린 것은 아닙니다. 렘브란트는 납이 포함된 흰색과 갈색의 안료, 그리고 황이 포함된 버밀리온을 즐겨 사용했는데, 납과 황은 화학결합을 통해 검게 변색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게다가 당시 산업혁명으로 도시 공해가 심해지며 대기 중의 황산화물까지 변색의 요인이 되어 작품의 왜곡은 배가 되었습니다.
(좌) 빈센트 반 고흐, <센느 강둑>, 1887 / (우) <붓꽃이 있는 아를 풍경>, 1888 |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 소장
한편 노란색 안료를 즐겨 사용했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작품 역시 변색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그는 작품에 크롬옐로라는 안료를 주로 사용했는데, 이 안료에는 납성분이 함유되어 빛에 의해 산화되었고, 그렇게 고흐의 노란색은 점차 빛을 잃어가는 처지에 놓입니다. 각국의 과학자들은 고흐의 1887년작 <센느 강둑>과 1888년작 <붓꽃이 있는 아를 풍경> 2점의 그림을 대상으로 안료의 변색을 추적했고, 당시 작품에 밝은 노란색을 사용했던 부분이 2011년 현재에는 어둡게 퇴색되었으며, 이런 진행이 계속된다면 2050년에는 원래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어둡고 탁한 색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외선을 막을 수 있는 보호재를 덧칠하여 어두운 장소에 보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조언이 있지만, 그 보호재를 덧입힘으로써 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증과 우려를 거듭하게 됩니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1505~1512 | 로마 바티칸궁전 소장
앞서 얘기했던 <천지창조>는 천연안료를 사용한 작품입니다. 그 시대의 색을 놓치지 않고 현재의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이유는 정교한 복원술도 있겠지만, 천연안료의 안정성과 유지력에 큰 무게를 둘 수 있습니다. 물론, 득과 실이 공존합니다. 미켈란젤로의 걸작은 그 당시의 화려한 색채를 되찾았지만, 선명한 색감을 되살리기 위해 고(古) 색의 예스러움을 닦아내어 그 만의 아름다움을 잃었다는 아쉬움과 함께 복원에 의해 다시금 손상이 시작되었다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작품 위에 쌓여있던 동물성 아교와 양초 밀랍 등을 제거함으로써 관람 인파가 발산하는 열기와 습기, 먼지와 박테리아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원래 모습 유지에 있어 취약점을 갖게 된 것이죠. 복원 전문가들에게 요구되는 많은 요건 중 “개입을 최소화하고, 후대에 교정 가능한 수준에서 멈추라”라는 말이 있듯이, 천지창조의 복원을 통해 문화재 복원의 빛과 그림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천연안료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왔습니다. 과거의 시행착오와 연구가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는 아름다운 색을 온전히 감상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랜 전통과 많은 이야기를 품은 천연안료는 현대의 작가들에 의해 다시금 미술 작품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천연안료를 사용하는 현대작가

Leopard Apple-Gold 1

정해진

40x40cm (8호)

탐색(探索)

정해진

58x50cm (12호)

정해진 작가는 서양의 명화와 한국 전통의 제작기법을 결합해 작업합니다. 작가의 작품은 천연안료를 사용하였기에 더욱 특별합니다. 바탕층이 되는 고운 비단의 올 사이사이를 물에 용해한 동물성 아교로 여러 번 덧칠하여 매운 후, 그 위에 광물인 진사 (辰砂)1)에서 얻어낸 주사 (朱砂)2)를 정교하게 올립니다. 작가가 사용한 붉은색 안료인 주사는 입자별로 분류가 가능하며 아교액에 혼합했을 때 가장 아래에 가라앉는 입자는 위에 떠오르는 입자보다 무거운 채도와 선명함을 보입니다. 입자별 색감을 이용하여 형태를 쌓고, 화면 위에 작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호피 무늬의 털을 붓으로 한 올 씩 그려 넣어 작품에 깊이와 섬세함을 더합니다.

행복기변

함보경

76x56cm (20호)

이따금 나를 행복하게

함보경

73x52cm (20호)

한편 함보경 작가는 남동광 (藍銅鑛)3)에서 얻을 수 있는 석청 (石靑)4), 석록 (石綠)5), 주사 (朱砂) 등의 천연안료를 이용하여 과거의 인물과 배경을 그리며 그 안에 현대적인 상황과 사물을 담아 역설적이며 유쾌한 한국화를 선보입니다. 작가가 사용한 녹색 천연안료인 석록은 뇌록(磊綠)6)과 동일한 색상을 가진 안료로, 지난 2013년 경북 포항의 뇌성산이 뇌록 산지로 확인되어 희귀광물에 대한 천연기념물 지정이 추진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현대의 회화 작품에 꾸준히 사용됨은 물론, 단청이나 회화 문화재의 복원에 있어 천연안료의 보존과 연구가 더욱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천연안료인 석채는 화학안료인 물감보다 다루기 어려운 재료임이 분명하지만, 작가들에 의해 지금까지 꾸준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깊이감과 적당한 무게감 등 석채 특유의 발색은 작가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기 때문이죠. 천연안료를 사용함에 있어 수고로운 작업 과정은 고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작품에 조금 더 애착이 생기고 흥미와 재미를 넘어선 특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작가들은 말합니다.
천연안료의 계승
과거의 화가들은 색을 만들기 위해 주변 또는 바다 건너의 원산지에서 수입한 광물을 이용하여 자신의 미적 감각을 발휘하였습니다. 긴 역사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현대의 작가들은 그것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오늘날의 작품 활동에 이르렀습니다. 비교적 다루기 쉬운 합성 안료가 주를 이루는 요즘, 천연안료의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의 경우, 중요한 그림에 특별히 문화재라는 용어를 사용해 보존, 관리하고 있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회화의 바탕재로 사용되는 지류와 섬유류는 빛, 온도, 습도 등 물리적 요인과 유해가스, 물질 간의 화학적 결합, 또는 곤충, 미생물 등 생물적 요인으로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바탕재 위에 올라가는 안료 역시 유지에 있어 보다 안정적이라면, 현재의 우리는 물론 후대에까지 아름다운 작품을 공유하고 함께 감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연안료 본연의 물리적 특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함은 물론, 작가들의 활용을 통한 실질적인 개발이 함께한다면, 자연의 선물인 천연안료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아름다운 재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용어 해설
1) 그리스, 로마시대와 기원전 중국에서부터 사용된 황화수은 성분의 귀중한 천연석입니다. 중국 호남성의 진주(辰州)에서 생산되어 진사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출처: 가일 전통안료
2) 굴절률이 매우 커서 도채력과 은폐력이 뛰어나며, 입자의 크기 조절이 비교적 용이하여 맑은 색상에서 침중한 색상으로의 변화도 자유롭습니다. 해충으로부터의 피해를 막아주는 방충 작용도 그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출처: 가일 전통안료
3) 전통회화는 물론 천연안료를 사용한 프레스코, 템페라 등의 장르에서 대표적인 청색으로 사용되는 염기성탄산동 광물입니다. 입자에 따라 하늘색에서 진한 군청까지 다양한 발색을 보입니다. | 출처: 가일 전통안료
4) 입자에 따라 다양한 발색이 가능한 안료이며, 소성(燒成)에 의해 암청색을 보여주며 소성 시간을 늘려 감에 따라 어두운 색조를 보입니다. 이와 같은 사용은 전통 불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출처: 가일 전통안료
5) 최고급 공작석을 엄선하여 제조한 고채도의 안료이며, 궁중화나 초상화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출처: 가일 전통안료
6) 회색빛을 띤 녹색 안료로서, 단청(사찰이나 궁궐 등 목조건물에 양식화된 문양을 그려 아름답게 장식한 것)의 안료로 많이 쓰입니다.
참고 문헌
『상인과 미술』, 양정무, 사회평론, 2011
『미술관에 간 화학자』, 전창림, 어바웃어북,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