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T

5/22까지 방콕 디자인 호텔 숙박권 증정!

3개월 체험권 - 월 33,000원

앵포르멜이라는 단어는 형식, 양식이라는 formel에 부정형 접두사인 In으로 결합된 단어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비형식, 비정형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하지만 미술사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일어난 서정적 추상회화의 한 경향으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대응하는 프랑스의 예술 경향을 말하곤 합니다.
Wols, <unknown title>, 1940s
위 작품은 앵포르멜의 대표적인 화가 볼스(Wols)의 작품입니다. 작품을 보면 강렬하고 거침없는 드로잉과 비정형적인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는데요, 이렇듯 앵포르멜 부정형 또는 비정형, 말 그대로 형태를 갖는 것에 반대하는, 격정적이며 주관적인 표현주의적 추상회화를 말합니다.
마티에르가 잘 느껴지는 앵포르멜 회화 : 장 포트리에의 작품들
Jean Fautrier, <Tête d’otage No. 14 (Head of a Hostage No. 14)>, 1944 / <Oradour-sur-Glane>, 1945
앵포르멜은 NO.3 마티에르 편에서도 언급된 적이었었는데요, 그 이유는 앵포르멜 화파의 화가들이 격정적인 감정의 표현을 위해, 안료를 화면에 두텁게 바르거나 모래 등의 이물질을 물감에 섞어 바르기 시작하면서 다양하고 독특한 마티에르들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미학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그동안 유럽의 문명이 만든 모든 것을 짓밟고 무너뜨렸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상실감과 허무감의 고통을 호소했고, 문명의 발전에 대한 단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적인 배경과 상처들이 감정의 표현을 중시하는 원초적인 추상, 앵포르멜을 발전시켰습니다.
세계 2차대전 당시 프랑스 풍경
사진출처 : WIKIMEDIA COMMONS
한편 앵포르멜은 ‘아르 브뤼(art brut)’와 ‘타쉬즘(tachism)’으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아르 브뤼'란 ‘날것의 예술’이란 뜻입니다. 앵포르멜의 대표 화가, 뒤뷔페는 제도권 밖의 예술, 특히 정신병자나 어린아이들의 그림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그는 그 어떤 문화적 관습에도 오염되지 않은 이들의 순수한 예술 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창조이며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아르 브뤼' 작품 예시 : 장 뒤뷔페의 작품들
(좌) Jean Dubuffet, <Grand Maitre of the Outsider>, 1947 (우) <Bedouin on a donkey>, 1948
작품 자체의 형식적 측면에서 앵포르멜 계열의 작품들은 종종 ‘타쉬즘’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는 얼룩을 의미하는 ‘타쉬(tache)’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두꺼운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 만든 얼룩과 같은 작품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붓질이 자발적이고 즉흥적이라거나, 튜브에서 물감을 짜 그대로 화면에 흘리거나 찍어댄다는 점에서 타쉬즘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비슷하지만, 그 크기나 규모가 작다는 데에 차이가 있습니다.
'타쉬즘' 작품 예시 : 볼스의 작품들
(좌) Wols, <It's All Over - The City>, 1947 (우) <Oui, Oui, Oui>, 1947
 
추상의 흐름,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VS 유럽의 앵포르멜
제 1, 2차 세계대전을 지내면서 미술계의 가장 큰 변화는 미술의 중심지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전후(戰後) 유럽은 더 이상 예술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화되었기 때문인데요. 더불어 많은 예술가들이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거나, 예술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미국이 점차 새로운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기하학적 추상의 예시 (좌 : 몬드리안, 우 : 말레비치의 작품)
(좌) Piet Mondrian, <tableau-i>, 1921 (우) Kazimir Malevich, <suprematism-self-portrait-in-two-dimensions>, 1915
이와 더불어 기존에 유행하던 몬드리안 풍의 차가운 ‘기하학적 추상’ 대신 뜨거운 ‘표현적 추상’이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두 유형의 추상은 금방 구별되는데요. 몬드리안, 말레비치의 화면은 사각형, 삼각형, 십자가 등 기하학적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폴록은 물감을 흩뿌리는 격렬한 표현적 행위를 통해 비정형적인 추상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등장한 이 새로운 경향의 추상을 '추상표현주의'라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 등장한 표현적 추상이 바로 '앵포르멜'입니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프랑스의 앵포르멜 (좌 : 잭슨 폴록, 우 : 볼스의 작품)
(좌) Jackson Pollock, <Untitled>, 1942-1944 (우) Wols, <Bleu optimiste>, 1951
'앵포르멜' 역시 '추상표현주의'와 더불어 표현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는데 있어서 큐비즘의 전통과 기하학적 추상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합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사조이지만, 모두 우연성을 존중하면서 자발성과 본능의 풍요로운 자유를 추구하였고, 무정형적인 화면을 보여주었다는 점 등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집니다.
한국 전쟁과 한국식 앵포르멜
전후 유럽의 정신적 공황 속에서 탄생한 앵포르멜은 한국전쟁 당시의 비극적 상황과 맞아떨어져 당시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요.
한국식 앵포르멜 : 윤명로 화백
(좌) 윤명로, <문신 64-1>, 1964 (우) <회화 M.15>, 1963 |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윤명로 화백 역시 1950년대 후반 한국 화단을 풍미했던 앵포르멜 운동의 주도적 작가들 중 하나입니다. 그의 작품은 두꺼운 물감 위를 손가락으로 자유롭게 휘젓거나 긁은 흔적을 보이며, 어두운 색조와 거친 물질감은 실존적 의식의 응집을 보여줍니다.
한국식 앵포르멜 : 박서보 화백
(좌) 박서보, <원형질 No.1-62>, 1962 (우) <원형질 NO.21-65>, 1965 | 출처 : 네이버 캐스트
박서보 화백은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며,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는 회화관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아직도 인상주의적인 구상 회화가 주류였던 당대의 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요. 그의 작품들은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들의 절규와 항변을 표현합니다. 그의 인체를 해부하듯 왜곡시킨 형태와 젊은 세대의 절망을 상징하듯 어두운 색조는 앵포르멜 회화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식 앵포르멜 : 김종학 화백
김종학, <작품 603>, 1963 |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김종학 작가의 작품은 심리적 억압 상태로부터 벗어나려는 한 인간의 실존적인 몸부림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생명의 근원적인 형상을 연상시키는 형태와 어두우면서도 격정적인 붓 터치는 전형적인 앵포르멜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앵포르멜 회화의 현재 : 현대작가의 작품들
한국 미술계에 앵포르멜의 열풍이 밀어 닥친 이러한 상황에 대해 평론가 이일은 “6ㆍ25 사변은 우리나라의 정신적 풍토를 기묘하게도 제2차대전 후의 유럽의 그것에다 직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듯이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20대에서 전쟁을 가장 참혹하게, 가장 절실하게 살아낸 우리의 젊은 세대와 2차대전 후의 유럽의 폐허를 방황하는, 이른바 아프레게르(apres-guerre, 전후)라는 현대문명과 전쟁의 사생아들 사이에 맺어진 체험적인 공감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기술하기도 했습니다.

앵포르멜 미술은 60년대 중반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지만 그 후 서서히 냉각되며 70년대의 모노크롬 회화에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현대의 국내 작가들 중에서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듯한 격정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는 추상미술 작가들이 존재합니다.
정진서, <fountain_2017_01>, 2017
정진서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들로부터 생겨난 감정들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의 화면에 나타난 얼룩은 마치 타쉬즘(앵포르멜)을 연상시키는데요, 작가는 내면의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일반적인 회화 재료가 아닌 밀랍을 작품의 표현 매체로 사용하여 추상적인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fountain_2017_01

정진서

117x91cm (50호)

이상훈, <Far&Ancient Universe 15 No.19>, 2015
이상훈 작가는 한국 추상의 근원인 앵포르멜의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색이 고르게 발린 평평한 캔버스 위에 두터운 물감을 나이프와 같은 물체로 눌러 바른 듯한 작가의 독특한 마티에르는 서정적인듯하면서, 이성적인 차가움이 동시에 느껴지게 하는데요.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새로운 공간감을 창출하고, 더 나아가 감상자들에게 어떠한 응집된 에너지를 선사하고자 합니다.

Far&Ancient Universe 15 No.19

이상훈

73x117cm (50호)

한국 미술계는 앵포르멜 미술을 계기로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 양식과 늦게나마 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국제적인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양식적인 면에서 분명 서구 모방적인 성격이 강했으나, 권위에 대한 도전, 개인의 표현과 창조적 자유의 존중과 같은 개혁적이고 전위적인 움직임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앵포르멜, 그 자체로는 미(美)보다는 추(醜)에 가까운 미술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작가들의 실험정신과 표현에의 의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전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