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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또는 점과 유사한 세밀한 터치로 그린 그림이란 뜻의 점묘화는 선과 면이 아닌 수많은 점들로 그리는 그림을 의미합니다. 동양화에서도 미법산수의 미점(米點)이 이에 해당되지만, 점묘화를 이야기할 때는 주로 신인상주의자들에 의해 그려진 그림을 말합니다.
Georges Seurat, <A Sunday on La Grande Jatte>, 1884-1886
이 그림은 신인상주의의 창시자인 조르주 쇠라의 대표작,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그림입니다. 그림 속에는 파리 근교의 그랑드자트 섬에서 휴일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요. 언뜻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풍경화가 어떻게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 그림이 무수한 점으로 이뤄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와 그 일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얼굴도, 입고 있는 옷들도 색이 다른 여러 개의 점들로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렇게 찍혀 있는 점들을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색처럼 보이게 됩니다. 바로 이런 그림을 점묘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신인상주의는 인상주의 이후에 출현한 여러 화파 중 하나로, 인상주의로부터 출발했지만 그 한계점을 극복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작품 비교
(좌 : 모네 - 인상주의, 우 : 시냑 - 신인상주의)
(좌) Claude Monet, <Sailing At Sainte Adresse>,1873
(우) Paul Signac, <The Jetty at Cassis, Opus 198>, 1889
위의 두 작품 중 왼쪽의 작품은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그린 풍경화이고, 오른쪽의 작품은 신인상주의의 화가 시냑의 작품입니다. 위 두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인상주의는 야외 사생에 기초한 점, 빛과 색에 대한 관심 등에서 인상주의의 영향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빛의 분석에 대해서는 엄밀한 이론과 과학성을 부여하고자 했는데요. 이를 위해 색채를 원색으로 환원하여, 화면을 무수한 점으로 구성하는 점묘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물감을 팔레트나 캔버스 위에서 혼합하지 않고, 작은 색점들을 배치해 필요한 색채를 얻는 방법을 말하는데요. 예를 들면, 청색과 황색의 작은 점들을 수없이 배열해 나가면 시각적으로는 녹색으로 보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신인상주의 작품의 화면구성 예시
Georges Seurat, <Bathers at Asnières>, 1884
또한 형태나 구도에서는 ‘황금분할’ 등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고전 회화에서 느껴지는 안정성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렇게 합리적이고 이론적으로 완성된 신인상주의자들의 화면은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인상주의의 화면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신인상주의자들의 화면은 극도로 정적인데요. 화면은 수평과 수직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고, 수직으로 선 인물들은 마치 조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기계적이고, 생동감이 결여된 화면은 신인상주의의 한계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더욱이 캔버스 위에 칠한 물감이 변색되면서 점묘화가 주는 색의 느낌이 변질되는 것 또한 문제였습니다.
신인상주의의 점묘화에 영향을 받은 화가들
(좌) 마티스의 작품 (중간) 피카소의 작품 (우) 칸딘스키의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쇠라와 시냐크 등이 그린 점묘화의 과학적인 형태와 감각은 마티스와 피카소, 칸딘스키 같은 화가들과 그 이후 세대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점묘화 속에 숨어있는 과학 원리
쇠라는 점묘화 한점을 완성하는데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간단히 물감을 섞어 그리면 될 것을 왜 쇠라는 무수한 점으로 색을 표현하려 했을까요?
빛의 삼원색과 색의 삼원색
우리가 색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빛이 어떤 물질에 도달했을 때, 빛의 일부를 흡수하고 또 반사시키기 때문인데요. 빨간색이 빨갛게 보이는 것은 다른 빛을 모두 흡수하고, 빨간색만 반사시키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우리의 눈은 빨강 초록 파랑의 3가지 빛만을 감지할 수 있는데요. 바로 이 빨강, 초록, 파랑을 빛의 삼원색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색의 빛을 적절하게 섞으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색을 만들어낼 수 있고, 빛은 섞을수록 밝아지는 특성이 있기에 모두 합치면 흰색(백색광)이 됩니다.

그러나 물감의 색은 빛의 색과 다릅니다. 물감이 청색과 노랑색을 흡수하고 자주빛을 반사하면, 그 물감은 초록색으로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물체가 빛을 반사해서 보이는 색 중에서 청색, 자주, 노랑을 색의 삼원색이라고 하는데요. 이 색의 삼원색이 모든 색을 만들어 내게 되고, 물감은 섞을수록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밝기가 낮아지고 탁해지기 때문에 모든 색을 합치면 검은색이 만들어집니다.
쇠라가 점묘화로 그림을 그린 이유는 바로 이 빛의 색과 물감의 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점묘화는 무수히 많은 점을 찍어 서로 다른 두 색이 반사하는 빛을 우리 눈이 동시에 인식하면서, 하나의 색으로 보게하는데요. 두 색이 섞여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탁해지지 않고 훨씬 밝고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빛과 색채에 대한 점묘화의 과학적 원리는 현대에도 사용되고 있는데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첨단 IT 기기인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모니터 위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원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점묘화의 명맥을 잇는 현대작가
이처럼 신인상주의는 과학과 예술을 결합해, 화려하고도 창의적인 점묘화라는 결과물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많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점묘화는 현대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오픈갤러리의 추연신 작가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추연신, <박제된풍경_Maligne lake>, 캔버스에 유채, 91x116cm, 2007

박제된풍경_Maligne lake

추연신

91x116cm (50호)

추연신, <귤나무>, 캔버스에 유채, 45x38cm, 2009

귤나무

추연신

45x38cm (8호)

추연신 작가는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을 점묘로 재해석한 풍경들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들은 작가의 기억 속에서 이미지가 인간의 감정과 시간에 흐름에 따라, 재구성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사실로서의 경험과 감각, 감정 사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기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인상주의자들이 점묘화를 통해 추구한 예술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미학적인 차원에서 절대적 평등의 세계를 추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신인상주의와 점묘화가 갖는 의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