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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서양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밀레를 언급할 때 항상 같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르비종'입니다.
과거 국내에서 열렸던 밀레 전시 포스터 / 영문으로 바르비종 & 퐁텐블로라 (Barbizon & Fontainebleau)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르비종이란 단어는 원래 미술 용어가 아닌,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단어가 어떻게 밀레의 미술을 설명하는 용어가 되었을까요?
화가들의 마을, 바르비종

바르비종(Barbizon)은 프랑스 파리에서 30마일 정도 떨어진 퐁텐블로 숲 근방에 있는 작은 마을의 이름입니다. 이 마을은 일명 ‘화가들의 마을(Le Villagedes Peintres)’로 불리는데요. 마을의 중심 거리(Rue Grande)를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지만, 마을의 소박한 풍경에 매료된 화가들이 하나둘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1830~1860년경에는 코로, 밀레, 루소 등 80명 이상의 화가들이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프랑스 지도상의 바르비종 & 바르비종 마을에 세워진 표지판 / BARBIZON Village des Peintres (해석 : 화가들의 마을 바르비종)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바르비종은 그저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19세기 중반, 당시 유럽을 휩쓸던 전염병인 콜레라를 피해, 화가 루소와 밀레 등이 이주해오면서 점차 화가들의 창작촌이 조성되었습니다. 바르비종에 정착한 화가들은 주로 시골 마을과 퐁텐블로 숲의 풍경들을 그렸는데, 이러한 화가들의 집단을 일컬어 바르비종파(École de Barbizon)라고 부릅니다.
도시에 지친 사람들 : 자연과 농촌에 대한 노스텔지아
산업혁명과 함께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던 1800년대 유럽. 수차례의 혁명이 있었던 프랑스 역시 파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문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나 화려한 도시문화가 발달해갈수록, 사람들은 자연과 농촌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테오도르 루소 (Theodore Rousseau) , <Landscape of Jura Arbois>, 1861
자연의 대한 향수 때문인지 당시 프랑스에는 자국 여행을 즐기는 화가들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바르비종파의 대표 화가인 루소(Théodore Rousseau) 역시 그중 하나였습니다. 루소는 프랑스의 다양한 장소를 여행하며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진행했는데요. 그러던 중 그는 마침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야외 사생(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라는 풍경화 제작 방식을 고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제작 방식은 다른 바르비종파 화가들과 이후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모너니즘으로 향하는 징검다리
테오도르 루소 (Theodore Rousseau), <Look at Barbizon> ,1850
루소가 고안한 '야외 사생' 방법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당대 사람들은 루소의 풍경화를 비웃었습니다. 그 이유는 루소의 풍경화가 당시 미술계를 지배하던 화풍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프랑스 미술계는 아카데미(Académie Royale des Beaux-Arts : 17세기 중반 설립되어 프랑스의 미술계를 주도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미술기관)를 중심으로 신고전주의 혹은 낭만주의 화풍의 웅장하며 이상적인 풍경화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이들은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고 묘사하는 대신 화실에서 갖은 기교와 상상이 담긴 풍경화를 그리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 독립적인 풍경화는 저급한 장르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풍경화는 단독으로 그려지지 않았고, 신화와 성서를 다루는 그림의 배경 정도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화풍으로 그려진 작품들
(좌) 니콜라스 푸셍 (Nicolas Poussin), <The Ashes of Phocion collected by his Widow>, 1648
(우)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Two Men Contemplating the Moon>, 1825 - 1830
때문에 그들의 시각에서 루소의 풍경화는 너무나 날것 그대로의 작품이었으며, 천박하기 그지없는 작품으로 치부되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루소는 살롱전(Salon de Paris :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권위적인 전시)에 꾸준히 자신의 풍경화를 출품했지만 매번 낙선하기 일쑤였고, 이로 인해 ‘낙선대가(Le grand refuse)’라는 별명까지 얻게 됩니다.
바르비종파 풍경화와 인상주의 풍경화
(좌) 테오도르 루소 (Theodore Rousseau), <Landscape of Jura Arbois>, 1861
(우)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Windmills at Haaldersbroek, Zaandam>, 1871
루소를 비롯한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아틀리에의 실내 제작을 지양하고 직접 자연으로 나아가 그 속에서 풍경을 그렸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연주의적인 양식을 지향하였으며, 자연에 귀의하여 자연과의 내밀한 교감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바르비종을 대표하는 7개의 별
(좌) 줄스 뒤프레 (Jules Dupre), <Cows crossing a ford>, 1836
(우) 카미유 코로 (Camille Corot), <In the Forest of Fontainebleau>, 1860-1865
바르비종의 주요한 화가로는, 루소와 더불어 '바르비종의 일곱 별'이라 불리는 밀레, 코로, 뒤프레, 도비니, 디아즈, 트루아용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바르비종파라는 단어는 하나의 미술사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들의 그룹을 칭하는 말인 만큼 이들의 화풍이나 관심사가 모두 똑같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의 자연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화가 개개인의 관심에 따라 서로 다른 화풍을 띠기도 했습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 (Jean-Francois Millet), <The Gleaners>, 1857
예를 들어 루소를 비롯한 코로, 뒤프레 같은 대부분의 바르비종파 작가들이 날씨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바르비종과 퐁데블로의 자연 풍경에 관심을 두고 풍경화 그 자체를 주로 그렸다면, 밀레는 자연과 어우러져 일상적인 노동에 전념하는 농부나 목자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물론 다른 바르비종파 화가들의 작품에도 농부나 목자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밀레처럼 작품의 주제로 활용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바르비종에서 밀레가 관심을 가졌던 대상은 자연보다는 그러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콩스탕 트루아용 (Constant Troyon), <Calf cows at the marl>
한편 트루아용과 같은 일부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인물도 배경도 아닌 시골에서 키우는 가축들에 관심을 가진 화가들도 있었는데요. 트루아용같은 경우에는 바르비종 풍경을 배경으로 그린 많은 소 그림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농장에서 키우는 개, 양, 말, 거위 등 다양한 동물들을 그렸습니다.
바르비종 풍경화의 전통을 잇는 현대의 풍경화가
지금도 프랑스에 바르비종 마을에는 많은 수의 화가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바르비종파 화가라고 불리지는 않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바르비종파의 조건은 1800년대 바르비종에 거주하면서 자연과 농촌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그린 화가라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에도 자연과 농촌에 머물며, 야외 사생 작업을 즐기는 작가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겨울 들판

이현열

60x85cm (25호)

바르비종파의 예술정신과 가장 닮아있는 현대의 국내 미술작가의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현열 작가는 마치 바르비종의 화가들처럼 직접 화폭을 들고 산과 바다, 강과 들을 누비며 스케치한 실경을 바탕으로 우리 산수를 고즈넉이 담아냅니다.

작품들은 한결같이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도 잔잔한 표현으로 깊은 감동을 주는데, 이는 작품이 한 폭의 풍경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건네는 대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손길로 거듭난 우리나라 풍경에는 산수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우리네 삶의 면면도 함께 담겨 있는데요. 그리하여 작품들에선 그리운 농촌과 정겨운 사람들의 내음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보성차밭

이현열

60x91cm (30호)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자연과의 교감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관찰한 경험을 현장에서 묘사한 바르비종파의 새로운 풍경화는 신진 화가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후대의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인상파 화가들이 이 새로운 화풍의 탄생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는데요.

바르비종파의 의의는 바로 이처럼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화풍의 전통적인 풍경화와 인상주의 풍경화를 잇는 징검다리가 역할을 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만일 루소를 비롯한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자연 속에서 살지 않았다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자연의 숨결이 느껴지는 혁신적인 풍경화들을 감상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