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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수

Dong Soo Seo

서울대학교 서양화 학사

5점의 작품
5점의 작품
개인전
2023 제4회 개인전 (갤러리 더플럭스/더플로우)
2022 제3회 개인전 (인사아트센터 본관)
2021 제2회 개인전 (갤러리 더플럭스/더플로우 초대전)
2020 제1회 개인전 (인사아트센터 본관)
단체전
2023 86 동문전 (갤러리 더플럭스/더플로우)
빌라다르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사미인전 (카포레 컨벤션홀)
2022 광화문 국제아트페스티벌 초대작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본관)
창작미술협회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babidiba NFT 작가전 (루벤갤러리)
2021 NFT 비긴즈 아트페어 (사이아트센터)
빌라다르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창작미술협회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997 서울의 바람전 (인데코 갤러리)
1995 감성과 표현전 (이콘 갤러리)
서울의 바람전 (인데코 갤러리)
뉴폼전 (윤 갤러리)
수상/선정
2021 소마미술관 아카이브 등록작가 (소마미술관)

작가의 말

평론

당신은 죽지 않기 위해 이름에 목숨을 새겨 살아가는 생들을 아는가.

살아있다는 것은 우주 속에서 가장 부자연스러운 일 중에 하나이다.
우연의 고통과 찬란함. 누군가에게는 아까우며 누군가에게는 끝없는 고통인.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삶을 빌려온다. 빌려온 삶의 끄트머리를 잡고
순간의 절망과 추락이 반복되는 구절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결국 부서지면서도 죽지 않았다.

당신이 생의 닳아감을 껴안아
무너지지 않음이 바로 숭고한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 이름에 목숨을 새긴 이의 남김을 아는가.
분노와 고통, 마찰과 부러짐, 싸움의 찰나 또는 피어짐의 순간.
그가 죽지 않음은 나를 둘러싼 수많은 생의 연장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고통들이 아름다움으로 찬양받는다.

남김없이 생을 고발한다.
우리의 땅이 멀리서 고요하게 붕괴와 시작을 향해 회전하는 동안에도
끝없는 상해와 생의 핏줄기가 꽃으로 흐드러지고 검붉게 자리잡은 흉짐이 불꽃으로
타오르는 순간을 알리러 목숨을 붓질할 셈이다.
부디 두 눈으로 마주하여 보소서,
고통과 목숨은 곧 하나의 뿌리에서 온 가시박힌 아름다움인 것이다.

그리하여 쓰러지지 않고 발을 땅에 박아 서 있는 저 무수한 생들은 경이다.
목숨을 쪼개내어 발라 기록된 그 모습들은 모두 우리이다. 우리의 고통과 얼룩진 찬 바닥
그리고 하루하루의 살아냄은 결국 생이 꾸려낸 증명이자 열감의 자국으로 소리를 낸다.
색을 입는다. 형상이 될 것이다.

바닥에서 피어나 하늘로 떨어질 운명이다.
깊게 베어짐은 우리의 줄기가 되고 충돌은 우리의 손과 발이 될테다. 우리가 쥔 목숨이
스스로 자유를 묶어내어 몸은 더이상 해방에 목메지 않아도 우리는 삶이다.

마침내 목숨이 우리에게 부여한 가장 짧고도 숭배받아 마땅할, 우주에서 가장
부자연스러움에도 꼿꼿하게 고개를 들 영원의 풍경이다.

서동수, 목숨 수자를 쓴다.

서동수가 남긴 또 다른 목숨, 서이정 올림





작가노트


존재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모든 살아있는 존재가 그렇듯 인간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욕망한다. 죽지 않을 만큼의 안전함을 욕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쾌락으로, 탐욕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바로 그 욕망이 에너지가 되고 이를 토대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삶을 살아가게 된다.

삶은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는 상황 속에서 상처를 주고 받는 사투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욕망하는 생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생에게 남겨질 상처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상처는 생이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자 꼬리표이다. 그것은 인간이 역사라고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작가적 탐구는 바로 이 지점, 작은 상처 혹은 작은 역사를 추적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어느 동짓날, 오랫동안 사람 손이 타지 않은 그래서 길조차 가늠할 수 없는 들과 산을 헤매다 보면 제멋대로 얽히고 설킨 삶의 끝자락에 선 생명체를 발견한다. 가장 치열한 생존방식이 만들어 낸 자유롭고 기운찬 선들의 향연을, 때로는 하찮아 보이는 모서리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낡은 철판에 남겨진 스크레치들을 추적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살아 움직였던 모든 것들의 남겨진 상처의 흔적을 찾아나서게 되자 그곳에서 비로소 생의 비명 소리를,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이 비극적인 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생과 자연의 삶 속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그래서 마침내 자유롭고 아름다운 선의 형상들을 만나기를 원한다.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 느낌들은 과연 상처가 가져온 것인지, 상처를 견뎌낸 삶이 가져온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 무엇이라 짐작할 때 즈음 그들은 비웃듯 전혀 다른 모습으로 계속해서 탈바꿈한다. 끊임없이 생멸하는 존재들..

그들과의 만남은 격렬한 춤사위가 되어 내가 경험하지 못한 황홀한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생의 흔적을 포착하는 그것은 역사에 걸맞은 회화의 모습이 되고,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 길을 걷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