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작가의 모든 작업은 기억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자극들로 인해 과거의 기억이 소환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아주 작은 일까지도 떠올려내며 자극된 기억의 지점에 다가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 시도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명확한 과거에 근접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저 마음만 간지러운 상태에 놓이고 만다. 작가의 작업에는 이렇듯 현재에 이루어지는 과거의 재생과 재구성에 대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의 캔버스 위에 현현된 과거 기억들은 특정 장소로 부각되는가 하면 좀처럼 실체를 분간할 수 없는 감정의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기도 하고, 차근차근 더듬어 가는 기억의 지도처럼 또렷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다양한 색감과 형태로 변주된 기억의 서사를 짚어 보며 우리는 작가의 기억에서 시작된 감흥이 어느새 덮어 두었던 자신의 기억을 울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기억은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으로 정의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기억은 두고두고 깊어지는 감정일 수도 있고, 돌이켜볼 때마다 조금씩 변하며 새로이 간직되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일 수도 있죠. 기억을 주제로 삼는 이종호 작가의 그림들에는 이러한 각양각색의 다양한 기억이 등장합니다. 몇몇 그림은 우리 또한 알고 있는 특정 장소를 담고 있고, 어떤 작품들은 기억을 저장하는 세포 구조물인 시냅스가 가시화한듯 꿈틀거리는 추상화로 표현되며, 또 다른 작품들은 기억을 더듬어 길을 찾는 과정을 바둑돌 놓듯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또는 상황에 따라 기억의 다른 모습을 떠올리듯 이종호 작가의 작품들 역시 다양하게 변주되어 각기 다른 감성을 자극합니다. 밝은 벽면에서는 작품이 지닌 차분함이 강조되고, 어두운 색감의 벽면에서는 크리스마스의 꼬마전구 같은 은은한 화사함이 부각되는 양면의 매력을 지닌 그림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형태와 색감의 기억을 간직하고 계신가요? 작가의 작품에 드러난 기억과 견주어 보며 과거를 추억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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