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량 작가의 <명제형식> 시리즈는 추상적이고 거친 화면 위에 한글, 영어, 숫자 등 문자를 결합한 표현이 특징인 작품으로, 미술작품이 지닌 주관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명제(命題)’란 논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진리’ 혹은 ‘오류’라고 판별할 수 있는 문장이나 식을 의미한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참’ 또는 ‘거짓’이라 판단할 수 없는 예술작품이 논리학 용어를 제목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작품의 시각적인 이미지와 표현형식 또한 논리적인 구조와는 거리가 멀다. 물감이 흘러내린 자국, 읽어 내리기 어려운 문자, 규칙성 없이 섞인 색감까지 맥락 없이 결합한 듯 보이는데, 제목과 일치하지 않는 이러한 표현 형식 탓에 감상자는 작품이 분출하는 자유분방함을 더 극대화하여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이렇게 논리학 용어를 빌림으로써 역설적인 방식을 통해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미술의 ‘주관적인 가치’에 대해 효과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태량 작가의 작품은 팝아트와 색면추상이 결합한 듯 강렬한 화면이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표출하며 감상자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지우고 쓰기를 반복한 듯 읽기 어려운 문자 사이로 뚜렷하게 읽히는 단어나 숫자가 종종 섞여 있어, 감상자는 저도 모르게 화면 전체를 읽어 내려는 목표를 가지고 더욱 집중해서 화면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감상자는 전체 글을 제대로 읽어내는데 번번이 실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우리에게 답답함이나 좌절감을 느끼게 하기보다 오히려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듭니다. 낙서처럼 보이는 선, 그리고 아무렇게 흘러내리게 내버려 둔 물감 자국이 어지럽게 쓰인 문자와 결합하여, 어떤 과정으로 작품이 완성됐을지를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작품을 바라보며 상상을 펼치다 보면 작품의 제목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이 작품의 ‘제목’, ‘작품의 시각적 이미지’, 그리고 나의 ‘상상력’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오직 미술작품만이 전할 수 있는 주관적인 가치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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