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청량리, 동대문, 명동, 서울역 등의 작품 제목에서처럼 박수진 작가의 작품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 도심 속 공간이 묘사되어 있다.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부재이다. 지하철 출입문, 차로, 후미진 곳의 구석 등 작품 속 공간은 인물이 그려져 있지 않은 익명적인 공간이고 인기척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공간은 사람들이 늘상 스쳐 지나가는 장소인 동시에 삶의 공간이자 일상의 초상이다.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마주하고 스쳐가는 도심 속 주목받지 못하거나 소외된 공간은 사람의 부재를 통해 역설적으로 사람의 흔적과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인간성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을 담아내며 다른 차원에서 존재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추천 이유
도시 공간의 어귀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풍경들이 대담한 사선의 구도가 주는 강렬함과 대조적인 담담한 색조로 그려져 있습니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일직선의 사선을 통해 원근감과 거리감이 더욱더 부각됩니다.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공간이기에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공간을 그려내며 작품을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좀 더 일상 속의 추억들, 혹은 함께 삶을 그려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도시 속의 일상 공간을 주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각자의 삶이 녹아있는 공간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네의 모습을 공간에 투영하여 ‘공간의 초상화를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수진 작가의 작품은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일상 공간, 주변 사람들을 성찰적인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