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
석사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화 / 미술사
학사
내게 있어서 그리기는 기억하거나 혹은 상상하는 세계에 대한 기록이다. 손으로 섬세하게 무언가 그리는 것은 연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기는 주로 임의의 지점에서 시작되어 진행되는데 이렇게 임의적으로 시작되어 그려진 이미지들은 화면 속에 서 각기 다른 시점으로 이어진다. 따로 그려진 각각의 이미지들이 조합, 축적되며 점차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 즉흥적이고 우연히 그려진 형상들이 한 화면에서 개연성을 만들어 나만의 세계로 구체화되어 생성된다. 내가 기억하는 이미지들은 한때는 실재하는 공간이었지만(사실은 여전히 존재하는), 나의 기억에 의해 새로운 구조와 공간으로 재탄생 된다.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평생을 도시에서 살다가 최근 몇년간 제주도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세계는 도시 속 입방체들의 연속된 공간에서 자연의 생명체들이 연속된 공간으로 옮겨졌다. 차가운 도시의 연결된 공간들을 색채를 담아 표현 했었다면, 생명력이 넘치는 제주의 자연(곶자왈)은 흑백으로 표현해보았다.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을 가장 생명력이 없는 무채색으로 새로운 드로잉을 진행했다.
화면 속에서 보이는 구체적인 형상들은 나의 그리는 행위 속에서 탄생한 이미지들이다. 나의 임의적인 드로잉 속에서 여러 시점에서 합쳐지고 해체되어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드로잉으로 화면을 가득 채워 나가는 것은 국지적으로 생각하면 단순 반복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반복적인 그리기는 나의 시간의 연속성과 노동력을 담고 있다.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지루할 정도로 나 자신을 수련하고 다스려온 인고의 시간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그리고 시간으로 ‘그리기’ 라는 회화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선택적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