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서양화 학사
'사라짐'에 관해 작업하고 있는 조정은 입니다. 제 작업은 사물, 공간과 작별하는 방법입니다.
Q.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어떤 계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저에게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가장 신나는 일이었죠.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고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이 신기하고 행복했습니다. 꼬맹이일 때 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되어가고 있어서 날마다 설렙니다.
Q.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제 주변을 그렸습니다. 저는 무언가를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제 주변에는 낡고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있었고, 아주 오래된 동네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것들은 비록 나에게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 곧 사라질 것들이었습니다.그래서 '사라짐'이란 무엇이고, 모든 게 사라진다면 작가로서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건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그림에 옮기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제가 그린 것들은 사라져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나고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시간에 살고 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 아이들의 어린 시절의 풍경은 다릅니다. 저는 그림을 통해 사라져가는 한 시절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제 작업은 남아서 다른 이들에게 기억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이별 방법입니다.
Q. 주로 사용하시는 표현 방법과 스타일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모든 작업애는 픽셀드로잉이 들어갑니다. Pixel은 영어로 Picture element. 한자로는 화소(그림 화畵/ 본디, 처음 소素) 그림의 요소 혹은 그림의 처음이란 뜻입니다. 구상작업 이전에 픽셀드로잉을 이용한 추상작업들을 했습니다. 세포에서 시작한 드로잉인데, 소멸과 생성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생성될 때에도 그리고 소멸 될 때에도 분열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라짐’이 무엇인가 생각했을 때, 그것은 작은 부분들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언가가 생겨날 때의 모양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 그림에 등장하는 픽셀드로잉은 사라짐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시든 꽃이 다시 거름이 되는 것처럼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그림을 그리면서 기도합니다. 이것을 다 그리면 사라져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픽셀드로잉은 하나는 변화(사라짐, 다시 만들어짐)에 대한 암시이고 동시에 제가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하나하나 픽셀을 그리면서 사물이나 공간에 가진 여러 감정들을 비워가는 동시에 그림 속 공간을 채웁니다.
Q. 가장 애착이 가거나 특별한 작품이 있으신가요?
사라짐이 키워드가 된 이후, 저는 사람을 그리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이별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실루엣이 나오는 작품이 있습니다. <하수구 자화상> 이라는 작업과, <행궁동2>라는 작업입니다.<하수구 자화상>은 하수구를 그리다 보니 하수구에 비친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제 작업은 전부 자화상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사라져가는 존재구나 하고 거울 처럼 바라보는 작업입니다.<행궁동2>는 작업을 자세히 보면 픽셀드로잉이 된 부분이 그림자입니다. 한 명은 저고 나머지 한 명은 제가 이별한 사람입니다. 그림이 다 완성 된 날, 이별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그림들 보다 아픈 그림입니다.
Q.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주로 오래된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영감을 받습니다. 동네마다 구조도 다르고 사는 사람들도 다르기 때문에 그릴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Q. 앞으로 작업 방향은 어떻게 되시나요?
지금은 사라져가는 것들 중 '동네'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시를 한다면 그 동네의 전시장에서 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축제처럼 그 동네 사람들이 와서 자신의 동네를 기억하고 전시장에 온 외부 관객들에게도 그 동네 와 그 안에 사람들의 흔적들이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Q. 대중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바빠서 주변을 잘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사이 없어져버린 것들이 많습니다. 제 그림을 통해서 동네를 산책하듯이 주변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제 작업은 지금은 흔하고 평범해보이지만 시간이 많이 지날수록 더 소중한 작품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Q. 작품 활동 외에 취미 활동이 있으신가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선물포장공예도 좋아하고, 가죽공예를 배운 적이 있어서 작은 소품들도 만듭니다. 그리고 소설 책 읽기를 좋아합니다. 학교 다닐 때 소설창작실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서 한국 현대 소설을 접했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때 이야기라서 더 공감가고 잘 읽힙니다. 투고 하진 않았지만 소설도 몇 편 써봤습니다. 나중에 그림과 글을 연결해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창작은 고통스러운 동시에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한 가지에 집중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Q. 작품 활동 외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랑하며 많은 추억들을 쌓고 작업하면서 사는 것입니다.